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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가까이하기’ 와 ‘멀리하기’ 의 변증법

등록 2007-01-28 16:02수정 2007-01-28 16:08

디제이와 친구들은 망원경을 통해 몬스터를 가까이하면서 또 동시에 멀리한다. 몬스터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스스로를 가두면서 고립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디제이와 친구들은 망원경을 통해 몬스터를 가까이하면서 또 동시에 멀리한다. 몬스터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스스로를 가두면서 고립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질 키넌 <몬스터 하우스>

질 키넌의 애니메이션 <몬스터 하우스>(2006년)를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교훈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별로 재미 없다. 그 집이 품고 있는 비밀을 밝혀 가는 이야기로만 봐도 마찬가지다.

<몬스터 하우스>는 ‘타자성의 변증법’을 아주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이 말이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을 하면서 개념어를 쓰지 않을 순 없다. 개념을 갖고 노는 연습을 하는 것이 또한 ‘철학하기’이기 때문이다. 개념과 놀다보면 곧 친해지리라. 쉽게 말해, 타자라 함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총칭하는 말이다. 변증법은 상식적으로 ‘정-반-합’의 논리를 뜻하지만, 어떤 논리 전개가 선형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라는 것이 그 본질이다. 변증법의 어원에는 ‘상호 작용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상호 작용은 이미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일 가능성을 품고 있다.

디제이가 괴물을 보는 태도는
망원경 통해 상대에게 ‘거리두기’
괴물은 속박, 디제이는 자유 상징

소년 디제이는 요즘 들어 부쩍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앞집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네버크래커 할아버지가 홀로 사는 앞집에 대해 괴상한 소문이 무성하고 실제로 그 소문이 실현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접근 금지!’라는 팻말이 서 있는 그 집 뜰 안에 들어가면 뭐든지 사라진다. 집 자체가 괴물인 것이다. 심지어 네버크래커가 자기 부인을 살찌워 잡아먹었다는 소문까지 있다. 확인된 건 아니지만 디제이의 의심은 점점 불어난다. 그 집에서 눈을 뗄 수도 없고 그 집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도 없으니, 디제이와 몬스터 하우스는 이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이 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 관계를 구체적으로 유지하는 장치는 디제이의 방 창문에 설치해 놓은 망원경이다. 디제이는 망원경으로 자기와 대면하고 있는 ‘괴물’과 가까이 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둘 수도 있다. 망원경으로 괴물을 끌어당겨 자세히 살펴보면서도 자신은 괴물로부터 멀리 있어서 일단 안전하다. 바로 이 이중성이 몬스터로 대표되는 ‘별난 타자’를 상대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가까이 하기’와 ‘멀리 하기’가 절묘한 균형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디제이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길을 건너 앞집에 접근할 때도, 그는 어느 순간에라도 뒤돌아 자기 집으로 도망칠 준비가 돼 있다. 그의 마음도 가까이 하기와 거리 두기로 정확히 반분돼 있다.

디제이와 괴물과의 이상한 관계 맺기에 차우더와 제니가 합세한다. 이들이 괴물을 대하는 태도도 디제이와 마찬가지다. 그들은 괴물에게 아주 가까이 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괴물로부터 완전 격리되지도 않는다. 미묘하게 친근과 원격의 복합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점에서 변증적 긴장 관계 자체가 이런 상황의 활력이 된다.

여기까지 사람들이 몬스터를 어떻게 상대하는지를 보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남들로부터 괴물이라고 ‘찍힌’ 몬스터 하우스가 어떻게 타자를 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취하는 태도가 가까이 하기와 멀리 하기의 변증 구조에서 오직 한 쪽 뿐이라는 사실이다. 몬스터 하우스는 타자를 철저하게 ‘거리 두기’의 방식으로만 대한다. ‘접근하지 마!’라는 경고가 대표적이다(몬스터의 라틴어 어원도 ‘경고’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집주인인 네버크래커도 모든 것을 멀리한 채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산다. 몬스터는 타자와 가까이 하기를 포기하고, 철저하게 ‘자기 가두기’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곧 타자와 상대하던 관계를 끊고(絶), 철저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몬스터는 극단적으로 ‘자기 절대화’의 길을 간다. 그러므로써 괴물은 다른 이들에게 절대 공포의 존재가 된다.


다시 괴물과 괴물을 상대하는 사람들을 비교해보자. 디제이와 친구들은 괴물을 두려워하지만 관계를 결코 끊지 않고 오히려 접근과 격리의 이중 게임을 한다. ‘가까이’와 ‘멀리’라는 변증 구조의 역동적인 기제를 적극 활용하면서 별난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괴물에 대해 특별한 의미의 ‘자유’를 즐기고 있다. 반면 몬스터 하우스와 네버크래커는 변증 구조의 한 쪽(가까이 하기)은 상실한 채 자기 가두기만이 가능하다(더구나 집 지하에 박제된 채 갇혀 있는 콘스탄스를 상기해보라!). 남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라 남을 구속하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극단적인 자기 속박의 상태에 있다.

몬스터가 속박을, 몬스터의 타자들이 자유를 상징한다는 것은 이 작품의 다양한 이미지에도 잘 드러난다. 몬스터 하우스에서 상징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모두 ‘사각형’이다. 직사각형의 경고 팻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직사각형 현관, 증오로 불타는 눈 같은 두 개의 정사각형 창문, 회한의 한숨이 뿜어져 나오는 각형 굴뚝 등이 그것이다. 모든 것을 ‘가두는’ 이미지인 것이다. 반면 디제이의 망원경, 차우더의 농구공, 제니의 수레바퀴 등은 모두 둥글다. 언제 어디로 ‘멋대로 굴러갈지 모르는’ 것들의 이미지이다. 결국 ‘최악의 타자’로서 괴물의 문제는, 괴물과 그를 상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변증 관계에서 또 다른 변증구조인 자유와 속박의 역설적 관계를 복합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불행히도 인간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역사에서 줄곧 있어왔던 마녀 사냥도 괴물 만들기의 일종이고,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인 집단 따돌림 현상도 그런 성향이 표출된 것이다. 이런 경우도 타자성의 변증법을 적용하면 좀 더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한 가지 물어보자. 우리가 만들어낸 몬스터와 불평등한 변증 관계를 깨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몬스터와 코를 맞대는’ 것이다. 즉 변증 놀이의 이중 구조에서 한 쪽(멀리 하기)을 완전히 포기하고 다른 한 쪽(가까이 하기)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타자의 속박을 깨고 그에게 자유를 돌려줄 수 있다. 그런데 코를 맞대다니, 우스개 소리라고? 아니다. 키넌의 작품에도 이를 은유하는 장면이 있다. 그럼 각자 찾아보기를….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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