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작은 웬수’들 속마음엔 ‘엄마’가…

등록 2006-04-23 17:12수정 2006-04-24 14:07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아침 교실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책상에 머리를 박고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 특히 사내놈들의 하는 ‘짓’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집에서 제 엄마 속을 얼마나 끓일까 싶다.

샤기 컷(머리끝이 삐죽삐죽한 모양의 컷)을 한 몇몇 녀석들은 왁스를 발라 머리를 세우느라 등교 시간을 훌쩍 넘겨 집을 나서기 일쑤일 것이며, 친구 숙제를 정신없이 베끼고 있는 저 녀석들은 보나마나 어젯밤 내내 컴퓨터를 끌어안고 살았을 것이다. 뿐인가. 엠피3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만화책을 보는 녀석들은 집 밥상머리에서도 그러했을 것이니,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속이 터졌겠는가.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오히려 바락바락 말대꾸를 하며 대들었을 터, 그 또래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엄마들의 모습이 눈에 잡히듯 선할 뿐이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 그러하다면 어찌 견디겠는가. 가끔 놈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멀쩡하기 짝이 없다. 하는 짓은 걱정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속 한 켠엔 나름대로 제 엄마를 곱게 모셔놓고 있는 것이다.

요즘 시 감상 수업을 하는데,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감상을 쓰라 하면 꽤 많은 아이들이 ‘어머니’와 관련된 시를 고른다. 그리고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참회록이나 다름없는 감상글을 써낸다. 이런 식인 것이다. (내 자녀의 글이라 여기시고, 오늘도 어김없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갔을 이 ‘작은 웬수’들을 기꺼이 용서해 주시기를!)

“…아침에 엄마와 싸우고 학교에 왔다. 1교시 국어시간. 마음에 드는 시를 찾아 시 감상을 쓰란다. 기분도 꿀꿀한데 웬 시! 마지못해 시집을 뒤적이는데 문득 정채봉 시인이 쓴 ‘엄마’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 간간히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계시는
와불(臥佛)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시를 읽는 순간, 내가 완전히 나쁜 놈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 시인에게는 잔소리를 해줄 엄마도, 꾸짖어 줄 엄마도 없다. 오죽했으면 딱딱한 돌부처 품에 안겨 엄마를 찾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엄마가 없어서 매일 아파하고 그리워하는데 나 같은 놈은 그런 엄마에게 짜증이나 내고, 소리나 지르고…. 나는 정말 나쁜 놈인 거다. 돌아서면 후회할 짓을 왜 하나 모르겠다. 나중에 엄마에게 이 시를 읽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맨 마지막 연의 ‘엄마…’라는 구절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a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