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아빠 찬스’ 의혹 등 각종 자격 논란에 휩싸였던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40년 지기’ 정 후보자를 지명한 지 43일 만이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양보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 힘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정 후보자를 ‘정리’한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것은 지난 3일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에 이어 두번째다.
정 후보자는 23일 밤 입장문을 내어 “그동안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많은 자리를 빌려 자녀들의 문제나 저 자신의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또는 도덕적·윤리적으로 부당한 행위가 없었음을 설명드린 바 있다”면서도 “이러한 사실과 별개로,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제기되고 있고, 저도 그러한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이어 “저 정호영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고, 여야 협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직을 사퇴하고자 한다”며 “이제 다시 지역사회의 의료전문가로 복귀하여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통령실은 한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 표결 결과를 보고, 정 후보자의 거취를 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일 오후 민주당이 당론을 통해 찬성표를 던져 한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에 대한 ‘주고 받기’ 성격으로 정 후보자가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은 정 후보자의 거취 논란이 6·1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윤 대통령과 정 후보자 쪽에 자진사퇴를 압박해왔다.
정 후보자는 지명 직후부터 자녀의 경북대 의대 편입학 등 ‘아빠 찬스’를 비롯한 각종 의혹이 제기돼 ‘낙마 1순위’로 예상돼왔다.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 부원장, 원장이던 시절
딸과 아들이 나란히 경북대 의과대학에 편입해 논란이 불거졌다. 딸은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 진료처장(부원장)이던 2016년 12월 ‘2017년 경북대 의과대 학사 편입 전형’에 합격했다. 특히 아들의 경우 2017학년도에는 떨어졌지만,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장이 된 뒤 ‘2018년 경북대 의과대 학사 편입 전형’에 새로 생긴
‘지역 인재 전형’으로 합격해 제도 설계 의혹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두 자녀 모두 정 후보자가 고위직으로 근무하던 경북대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이력으로 스펙을 쌓은 점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편입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정 후보자의 아들이 학부생시절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린 점도 의혹 투성이였다. 정 후보자 아들은 경북대 의대 편입 전인 2016년 경북대 교수, 석·박사와 함께 전자공학회 논문 2편에 유일한 학부생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 후보자 아들은 편입 과정에서 논문 등재를 주요한 경력으로 소개했다. 두 자녀의 편입 전형 평가도 의혹을 샀다. 딸과 아들의 편입 전형에는 정 후보자와 논문을 함께 쓴 교수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높은 점수를 줬다. 정 후보자는 평가가 ‘블라인드’로 이뤄졌다고 해명했으나, 당시 의대 학사편입학 구술고사‧면접고사는 수험생의 얼굴과 이름, 수험번호가 공개된 채 치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정 후보자 아들은 병역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경북대병원에서 ‘척추협착’이라는 병무용 진단서를 받아 대구·경북 지방병무청의 신체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인 4급 판정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정 후보자 아들이 세브란스에서 2015년 당시와 현재 척추질환에 대해 재검사를 받게 했고, 그 결과 2015년 당시와 현재의 상태 모두 4급 판정에 해당하는 ‘신경근을 압박하는 추간판 탈출증’이 의심된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북대병원이 허리디스크로 일컫는 추간판탈출증을 척추협착으로 진단해 병무심사에서 유리하게 판정받도록 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남았다.
정 후보자 본인 관련 논란도 이어졌다.
정 후보자는 2018년 경북대병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받았지만, 정작 경북대병원의 2016~2017년 교류 실적에는 정 후보자의 참여 여부가 포함되지 않았다. 경북대 병원장 재직 시절에는 법인카드 사용 감시 강화 계획을 발표한 뒤에 정작 자신은 이용 제한 시간을 어기는 등 법인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2020년 2~3월 대구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정 후보자가 병원장이던 경북대병원의 ‘코로나 진료 실적’이 이 지역 전담병원 10곳 중 8위로 최하위권으로 드러나 비판받았다.
정 후보자의 업적으로 거론되는 ‘세계 최초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설치도 정 후보자의 성과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정 후보자가 2011년 수술 후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제대로 된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환자가 숨지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이 사건 재판에서 법원은 정 후보자의 과실을 인정한 바 있다. 이밖에도 미국 동창회와 골프 등 외유성 출장 논란과 경북대병원 채용비리, 업무추진비 최다 사용 등도 비판이 제기됐다.
입장문 전문
저는 오늘 자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직을 사퇴합니다.
그동안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많은 자리를 빌려, 저는 자녀들의 문제나 저 자신의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또는 도덕적․윤리적으로 부당한 행위가 없었음을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경북대학교와 경북대병원의 많은 교수들과 관계자들도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다수의 자리에서 자녀들의 편입학 문제나 병역 등에 어떠한 부당한 행위도 없었음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행위가 밝혀진 바가 없으며, 객관적인 자료와 증거들의 제시를 통해 이러한 의혹들이 허위였음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 별개로,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제기되고 있고, 저도 그러한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저 정호영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고, 여야 협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직을 사퇴하고자 합니다.
이제 다시 지역사회의 의료전문가로 복귀하여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지하고 성원해주신 윤석열 대통령과 대한의사협회, 그리고 모교 경북대학교와 저의 가족을 포함한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의 부족함을 지적해 주신 많은 여야 정치인들과 언론에도 감사드립니다.
저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의 결정을 통해 모든 감정을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계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2년 5월 23일
보건복지부장관 후보 정호영
박준용 임재희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