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들어 줄곧 ‘캐스팅 보터’ 구실을 했던 국민의당이 11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에서도 ‘존재감’을 한껏 뽐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부결시킬 만한 흠결이 없는데도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는 비판 속에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표결엔 자유한국당 5명, 국민의당 1명을 제외한 의원 293명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120명, 자유한국당 102명, 바른정당 20명, 국민의당 39명, 정의당 6명, 새민중정당 2명, 대한애국당 1명, 무소속 3명이었다. 민주당이 찬성,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반대 당론으로 표결에 임했고 국민의당은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겼다. 임명동의안 표결은 무기명 투표라 의원 개개인의 찬반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각 당의 입장을 근거로 따져보면, 민주당 120명, 정의당 6명에 두 정당과 성향이 비슷한 새민중정당 2명, 무소속 2명(정세균·서영교) 등 130명은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의원 39명 가운데 찬성표가 15표뿐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셈이다.
국민의당 의원 다수가 반대표를 던진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다. 초반만 해도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이 김 후보자 인준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군 동성애를 옹호했다고 주장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압박이 본격화되며 부정적인 기류가 지속적으로 확산됐다. 여기에 그동안 헌재소장을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 가운데 선출해온 관례를 깨고,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가 지명한 재판관을 소장으로 지명한 것에 대해 “헌재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고 한다. ‘선명 야당’, ‘강한 야당’을 전면에 내세운 안철수 대표의 ‘독려’ 역시 주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뒤 기자들과 만나 “여러 번 말했듯이 지금 20대 국회에서 국민의당은 결정권을 가진 정당”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행사한 이날의 ‘결정권’에 대해선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안 대표가 ‘광야에서 쓰러져 죽겠다’며 선명 야당 역할을 한다는데 기본적으로 국민의당이 무엇을 위해서 싸운다는 목적이나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며 “헌재소장 공백이 길었고 김 후보자는 소수 의견을 대표해온 사람인데 이렇게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진보적인 성향이자 호남 출신(전북 고창)인 김 후보자를 낙마시킴으로써 국민의당 지지기반인 호남이 돌아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렇잖아도 호남 민심은 안철수 대표가 들어선 이후에도 국민의당에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당이 보수 야당과 손잡고, 그동안 보수적인 헌재에서 소신있는 의견을 내온 김 후보자 인준을 부결시킨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이날 ‘예상 못한 승리’를 접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부결 결과가 나오자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환호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인준안 부결을 선언하자 박수를 쳤고,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과 얼싸안기도 했다. 이들은 “(인준안) 부결은 상식이 이긴 것”(자유한국당),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오늘의 결과를 깊이 새겨야 한다”(바른정당)는 논평을 내며 기세를 올렸다. 자유한국당 역시 헌법재판관으로 소신에 따라 소수 의견을 낸 것에 대해 무리한 이념 잣대를 들이대며 헌재소장 인준을 막았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규 최혜정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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