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걸어나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각각의 이유로 당권의 탐욕에 제정신을 못 차리는 나즈굴과 골룸 아닌가” (7월31일 페이스북)
“정진석, 김정재, 박수영 등 윤핵관 호소인들은 윤석열 정부가 총선승리를 하는 데에 일조하기 위해 모두 서울 강북지역 또는 수도권 열세지역 출마를 선언하십시오” (8월13일 국회 기자회견)
“당원 가입하라고 했더니 또 이걸 해당 행위로 보는 사람들이 있던데 정신이 좀 이상한 거 같다” (8월22일 <와이티엔>(YTN) 라디오 인터뷰)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최근 발언입니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속마음이 공개되고 당에서 축출된 뒤 그의 입은 더욱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 대표는 그동안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를 ‘말’로 공격했습니다. 그가 말로 싸움을 걸었던 대상은 오랜 ‘정치적 앙숙’인 안철수 의원과 신지예 전 녹색당 대표, 장혜영 정의당 의원, 그리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입니다. 이 전 대표가 이들을 상대로 날 선 발언을 내놓으면 그 자체가 뉴스가 됐습니다.
국민의힘 안에서는 최근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외부의 적을 타격하는 ‘저격’보다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 ‘난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외부를 향했던 그의 총구가, ‘파문’된 이후에는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웠던 전직 지도부 인사는 최근의 이 전 대표가 “자폭드론 같은 상태”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전 대표의 말싸움은 독합니다. 거친 말로 쏘아붙이고, 상대가 쓰러져 대응을 하지 않을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대표적인 상대가 정진석 국회부의장입니다. 정 부의장이 지난 6월 이 전 대표의 우크라이나행을 ‘자기 정치’라고 비판하자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에서 답례품으로 받은 ‘철퇴’ 사진을 올리고, “가시 달린 육모방망이와 비슷하다”며 비꼬았습니다. “보수재건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향해 육모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고 했던 정 부의장의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었습니다. 이 전 대표는 귀국길에 ‘지방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인 정 의원이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저격글을 페이스북에 세차례나 올렸습니다. 정치적 공격엔 몇배로 보복·응징한다는 이 전 대표의 집요함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당내에선 이 전 대표가 ‘정치를 게임처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국민의힘 인사는 “이준석은 프로게이머처럼 정치를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말싸움으로 상대방을 공격해서 게임처럼 이기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이 전 대표의 정치에는 감정이 없다. 자신의 말로 상대방이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이 전 대표는 자신의 적을 하나씩 꺾어가면서 다음 레벨로 올라가면 이기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 전 대표 발언의 ‘매운 맛’이 알려진 만큼 그와의 충돌을 피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친윤석열계인 한 의원은 “이 전 대표는 말싸움을 해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전 대표가 나를) 어떻게 공격을 하든 절대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말로 싸우는 이 전 대표의 전투력은 막강하지만 정치를 게임처럼 즐기는 그가 적을 양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상대가 케이오(K.O)패 할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하고 말싸움에서 진 상대는 이 전 대표의 발목을 잡는다. 말싸움을 본 동료들은 등을 돌린다. (이 전 대표가) 이겼다고 하지만, 이긴 게 아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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