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6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월 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등 선거 국면이 끝난 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각각 간판 구실을 했던 이준석 전 당대표와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힘을 잃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두 사람이 추락한 구조적 요인은 이대남(20대 남성)·이대녀(20대 여성)를 내세워서 유의미한 정치세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특정 유권자 집단을 기반으로 지지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확장성이다. 다른 유권자 집단과 공통의 이해관계나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는 광범위한 이슈에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응집성이다. 마지막 조건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향한 높은 충성도다. 젠더 갈등에 기반한 정치에서는 이 세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이대남 정치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반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다. 대표 사례가 ‘독일을 위한 대안’(AfD·대안당)이다. 대안당은 ‘젠더 이데올로기’가 전통적 가족의 붕괴를 일으키고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스페인의 극우정당 ‘복스’(VOX)는 2019년 두 차례 총선 캠페인 시기에 인스타그램 게시물 237건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35건(14.8%)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독일 대안당의 지지 기반은 옛 동독 지역 남성들이다. 이들은 낙후된 경제 상황에다 자신이 ‘이등 시민’이란 불만이 높다. 여기에 젊은 여성들의 대규모 이주로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이 더해졌다. 2015년 기준 옛 동독 지역 작센안할트주는 20~44살 성비가 여자 100명당 남자 117.9명이다. 페트라 쾨핑 상원의원(사회민주당)은 극우정치 연구 과정에서 만난 한 남성이 “만약 당신이 나에게 배우자를 찾아준다면, (반이슬람 이민자 운동인) 페기다 시위에 나서는 걸 그만둘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뉴욕타임스>에 소개했다.
한국의 20대 남성이 처한 상황은 옛 동독 지역과 유사하다. 2020년 기준 출생연도별 성비를 보면 1984년생까지만 해도 여자 100명당 남자 104.7명이지만, 1989년생은 남자 111.4명, 1994년생은 116.2명으로 뛴다. 2000~2005년생의 평균 성비는 여자 100명당 남자 108.1명이다.(표1 참조) 경제구조 변화에다 여성의 교육 기회 확대로 젊은 남성이 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남성성을 거부한다. 정확히는 아버지 세대처럼 살 수 없기 때문에 ‘의무’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마경희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2019년 보고서(‘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에 따르면 ‘가족의 생계 책임은 남자가 진다’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40대와 30대 남성은 각각 16.3%와 25.0%인데 20대 남성은 41.3%였다.(표2 참조) 2020년 경제·인문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청년 관점의 젠더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청년은 △강한 남성성 요구 △생계 부양 압력 △남성 비난·비하 등의 항목에서 기성세대보다 사회적 압력을 더 심하게 느낀다고 답했다.
결국 낡은 ‘의무’를 강요하는 사회를 겨냥한 분노 표출이 이대남 정치의 핵심이다. 군복무나 여성가족부에 민감한 것은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에서다. 따라서 실리적이고, 가치지향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내적 응집력도 약하다. 반면 다른 유권자 집단과의 확장성은 떨어진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제도나 예산을 없애는 데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다. 보수 입장에서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청년여성들은 기성세대에 견줘 젠더 의식이 강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민감하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핵심 경력이 사이버 조직 성범죄인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을 추적했던 점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소개한 경제·인문사회연구원 보고서는 19~34살과 35~59살 여성에게 각각 범죄 유형별로 불안감을 얼마나 느끼는지 물었다. ‘불법촬영’은 청년세대(60.4%)가 기성세대(33.5%)와 비교해 1.8배, ‘살인·폭력·강간’은 1.76배(청년세대 53.4%, 기성세대 30.3%) 더 불안하다고 답했다.
박선경 인천대 교수의 연구(‘젠더 내 세대격차인가, 세대 내 젠더격차인가?’, 2020년)에 따르면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여성들은 전통적인 성역할과 가부장 문화에 반대했으며, 그 강도는 1990년대생이 더 강했다. 하지만 국가의 개입이나 복지 확대 등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넘어가면 20~30대 여성과 나머지 여성 또는 남성 집단과 차이가 없었다.
여러 연구는 부모 자산이 많고 계층 지위가 높은 청년들은 남녀 불문하고 세금에 부정적이고, 경제적 지위가 각자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강함을 보여준다. 한국리서치가 2021년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페미니즘 성향의 20대 여성 비율은 고소득·고학력일수록 높았다. 월소득별로 보면 평균 200만원 미만에선 스스로 페미니즘 성향이라고 답한 비중이 22%, 200만~399만원 27%, 400만~599만원 38%, 600만원 이상은 47%였다.
젊은 여성들의 젠더정치 요구는 범죄·안전 문제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 세금 등 먹고사는 문제가 젠더 이슈와 결합될 가능성은 작다. 박지현 전 위원장이 대체재를 찾기 용이한 ‘젠더 원툴(한 가지만 할 수 있는 선수)’로 갇히게 된 구조적 원인인 셈이다.
젠더 대립 구도에서 손해를 보는 쪽은 국민의힘이다. 갤럽의 정당 지지율 추이를 보면 20대 남성의 보수정당 지지율은 2013년 상반기 평균 33.5%였다가 2021년 하반기 38.2%로 4.7%포인트 높아졌다. 거꾸로 20대 여성 지지율은 같은 기간 23.2%에서 10.3%로 12.9%포인트 떨어졌다. 이준석 전 대표의 입지가 좁아진 데는 이 20대 여성들의 ‘보수 극혐’ 정서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대남 없이 당내 정치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준석 전 대표 이후에도 보수발 젠더정치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