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 행사가 열린 지난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오른쪽 둘째)와 함께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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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자제분’ 김주애를 띄워준 것은 미국이다. 김주애는 ‘맞춤형 억제’가 낳은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웬 엉뚱한 소리냐고?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자.
한-미 군사동맹의 기본적인 목표는 억제와 승리다. 보유한 군사력의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여 북이 전쟁을 두려워하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다. 행여나 전쟁을 시작했다가는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손해만 볼 것이니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제에 실패하여 전쟁이 시작되면 이 군사력을 실제로 가동하여 승리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무기체계는 미국의 핵무기이다. 북이 미국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미국은 이보다 더한 핵 보복을 할 것이라는 위협이 억제의 핵심이다. 이 억제를 한국까지 확장한 것이 ‘확장 억제’다. 미국이 필요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여 북이 한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제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북이 공격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위협을 줄 수 있을까? 한-미 동맹이 찾은 대답이 ‘맞춤형 억제’다. 북이 가장 아파할 부분에 핵군사력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권의 종말’이 맞춤형 억제의 지향점이 됐다. 북은 정권 안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니 정권의 종말을 위협하는 것이 가장 아픈 지점이라는 것이다. 미국 핵태세 검토보고서가 “정권의 종말”을 공언한 이유다.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핵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 정합성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왜냐고? 맞춤형 억제는 일방적 논리인 데 반해 국제관계는 상호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자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맞춤형 억제를 구사하지만 이 전략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북이 미국의 핵무력을 두려워해야 한다. 북의 공포심이 맞춤형 억제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안보는 북의 불안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불안을 강요당하는 국가는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북이 군사력을 현대화하고 핵무장력을 강화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북의 안보는 한국과 미국의 불안이 된다. ‘나의 안보는 너의 불안’이라는 상호성을 미국 국제정치학자 존 허츠는 안보 딜레마로 명명했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려고 할 뿐인데 왜 너는 우리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하니?”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우리는 평화를 애호하지만 너는 호전적이야.” 이 딜레마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릴 때 군비경쟁은 끝을 모르게 된다. 한반도의 모습이다.
이제 한반도의 허우적임은 위험한 임계선에 접근하고 있다. 전쟁 중에 임시로 그어놓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억제라는 위협’이, ‘안보라는 불안’이 수시로 오가고 있다. 그 수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3축 체계로도 모자라 4축 체계를 추구하고 ‘플러스알파’까지 운위하고 있다. 북이 공격을 하기 전에 ‘선제타격’하고, 북의 미사일은 탄착하기 전에 공중에서 파괴하고, 북에 대량보복을 퍼부어 정권의 종말을 가져오겠다는 세 개의 축도 부족하다고 한다. 북의 미사일 발사를 아예 사전에 불능화시키는 제4의 축을 모색하고 있다. 북핵문제는 정권문제이므로 ‘참수작전’만으로는 부족하며 “북한의 민주화”가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국민의힘 북핵 위기대응 특별위원회가 공론화하고 있기도 하다.
김정은 정권도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든지 타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선보이고, 한국의 미사일 방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미사일과 탄두를 과시하고 있다. 한국의 선제타격이 작동하기 전에 더 선제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기동성과 은닉성을 개량하고 발사 준비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이것으로도 불안해서 아예 ‘전술핵무기’로 한국을 타격할 수 있도록 하고 ‘전술핵운용부대’를 지난 9일 열병식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 남북이 데칼코마니 같아 보이지만 사실 공정하지 않은 대비다. 미국 국무부는 2019년 한국 국방비가 440억달러였던 것에 비해 북한은 43억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했다고 평가했다. 적어도 국방비에 있어서 한국은 북보다 10배 넘게 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무부는 북한의 국내총생산이 162억달러라고 추산하고 있다. 즉 북이 총동원태세로 경제활동을 백 퍼센트 군사활동에 집중해도 한국 국방비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고 ‘적기지 공격’ 능력을 추구하는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맞춤형 억제’를 실현하기 위해 비핵무기와 핵무기를 모두 동원해서 북이 위협을 느끼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처럼 미국의 ‘확장 억제’에 불신을 시사하면 미국은 북에 대한 위협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최근 들어 미국의 군사적 활동이 활발해진 이유다.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작전계획을 갱신하고, 핵무기를 수시로 한국과 인근에서 과시하며, 독자적으로 또는 한국과 연합으로 또는 한·미·일 연합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바이든 정부는 김정은 정권을 끝장낼 능력이 넘칠 뿐만 아니라 그럴 의지도 충만하다고 과시한다.
하지만 미국의 억제는 북의 불안이다. 억제의 강화는 불안의 심화다. 북은 더 강하게 대응한다. “적대세력으로 하여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군사적 대결이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법령을 채택한다.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륙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문화한다.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괴물 핵미사일’로도 불안하여 고체연료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열병식에서 노출시키고 ‘전략미싸일부대’를 선보인다. “행성의 모든 악과 불의의 세력을 쓸어버릴” 능력과 의지를 과시한다.
‘김주애’는 북의 이러한 맞대응 전략의 일환이다. 한-미 동맹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노리고 있으니 ‘김정은 결사옹위’를 하겠지만 유사시에는 ‘백두혈통 결사보위’로 계속 싸워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인민군 열병식에서 군인들은 “김정은 결사옹위”, “백두혈통 결사보위”, “조국통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맞춤형 억제’에 대한 북의 대답이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방문학자로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