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법 내년 말까지 개정하라’ 결정
20여개국 ‘대체복무’ 도입, 문제없어
대통령 공약, 정부·여당 적극 나서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근거가 된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8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이나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내년말까지 병역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그 이후엔 위헌이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건국 후 징병제도 도입 이래 처음이고, 헌재 스스로도 2004년과 2011년의 합헌 결정을 7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병역 ‘기피’와 동일시해 습관적으로 형사처벌해온 법과 관행에 쐐기를 박은 점은 획기적인 결정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5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연인원 2만명 가까운 젊은 청년들이 줄줄이 수감되고 아직도 500여명이 갇혀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법기관의 판단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또 형사처벌 조항 자체를 위헌으로 하지 않아 향후 재심과 보상 문제에 논란의 소지를 남긴 대목도 한계로 남아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조항 자체는 합헌으로 보는 대신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병역의 종류’ 조항이 위헌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대체복무 도입을 비판·우려하는 시각에 대해 헌재가 반박한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국방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 자체가 적어 병역자원 손실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매년 400~600명 수준에 불과하니 맞는 얘기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하는 가짜 병역거부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전심사 절차와 엄격한 사후관리 절차’를 갖추면 걸러질 수 있다고 봤다. 또 복무의 난이도나 기간 면에서 형평성을 확보하면 굳이 기피 목적으로 대체복무를 택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도 일리가 있다.
헌재가 태도를 바꾸게 된 데는 2001년 <한겨레21>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래 대체복무 도입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꾸준히 우호적으로 달라져온데다 최근 하급심에서 무죄판결이 급증하는 등 법원의 태도 변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여기에 남북간 긴장완화로 더이상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한다’는 종전의 합헌 논리를 고수하기가 힘들겠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국내 인권단체나 국가인권위는 물론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사회가 대체복무 도입을 촉구해온 지는 이미 오래다.
이제 공은 국회와 정부로 넘어갔다. 내년까지 대체복무 입법과 운영의 준비를 끝내야 한다. 국회엔 이미 관련 법안이 여럿 제출돼 있다. 대만 이스라엘 등 20여개국이 대체복무를 도입하고 있어 우리에게 맞는 방안을 만드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대만은 경찰이나 소방 등 사회치안 분야나 병원·양로원 등 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독일은 재활센터나 유치원 등 공공복지 분야, 이탈리아는 문화유산 보호, 그리스는 우체국이나 법원 등 행정기관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니 정부·여당은 내년까지 미루지 말고 곧장 입법에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