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한겨레21>이 문제를 제기한 뒤여서 일반적인 관심은 있었지요. 그런데 기록을 읽어보니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년 1월29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형사1단독 박시환 부장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건 최초로 병역법 제88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대법관을 거쳐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박 전 대법관(65·사법연수원 11기)은 “그때 ‘이렇게 마구 처벌하는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고 16년 전을 떠올렸다.
그의 위헌심판 제청은 사실상 홀로 결단한 결과였다. “마음을 정한 뒤 법정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내라’고 했지요. 정찰제 형량이 선고될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았던 피고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더군요.”
박 전 대법관은 “문제 제기는 했지만, (당시) 위헌 결정을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위헌심판제청 결정문은 ‘진지하게 헌법적 검토를 해볼 단계’라는 내용으로 간단하게 쓰고, 피고인의 신청서를 첨부해서 냈다.
박 전 대법관은 6년의 대법관 임기를 마칠 즈음이던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유죄 판례의 변경을 시도했다. “대법관이 된 뒤 몇 년에 걸쳐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모았습니다. 전원합의체에서 판례를 변경해보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 결국 포기했습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대의 소수의견을 써서 남길 수도 있었지만, 유죄의 대못을 박게 된다는 생각에 물러섰다. 이듬해 전수안 전 대법관도 같은 시도를 했다가 역시 철회했다.
그는 대법원이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헌재 결정까지 나온 데는 하급심의 잇따른 무죄 판결이 큰 구실을 했다고 봤다. “이것은 사법 역사상에 없는 사건입니다. 대법원이 몇 차례나 유죄라고 판결한 것을 알면서도 하급심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계속 치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끔이더니 2~3년 사이에 쏟아졌습니다. 스크럼 짜고 데모하는 양상인데, 대법원으로선 징계도 할 수 없고 속수무책이었겠지요.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라는 것은 더는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