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여부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헌재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헌법재판소가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제도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의 병역법 개정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제시한 병역법 개정 시한은 2019년 12월31일이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해철·박주민·이철희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3건의 대체복무 도입 법안이 계류돼 있다. 세 법안 모두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적 확신을 이유로 집총(총을 드는 행위)을 거부하는 사람에 대해 일정 심사를 거쳐 대체복무를 인정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를 조화시키고자 한다”는 입법 취지를 밝혔다. 전해철·박주민 법안에서는 이들을 집총이 불가피한 국군, 경비교도대, 전투경찰대 등에 배치하지 못하도록 했다. 법안에 예시된 구체적인 대체복무 분야는 아동·노인·장애인·여성 등의 보호·치료·요양·훈련·자활·상담 등의 사회복지 업무, 소방·의료·재난·구호 등의 공익 관련 업무 등이다.
이들 법안에서는 대체복무 기간을 육군 복무기간(21개월)의 1.5~2배(30.5~42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현역병이나 보충역으로 복무하고 있는 경우에도 대체복무 편입 결정을 받으면 이미 근무한 기간을 차감하고 대체복무로 전환하도록 했다. 병역법 위반으로 1년6개월 실형을 살고 있는 경우에도 이미 집행된 형기를 차감한 뒤 대체복무가 가능하다. 대체복무 요원들은 군부대 이외 시설에서 합숙근무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대체복무 편입 여부를 결정하는 ‘판정’ 권한은, 전해철 안에서는 지방병무청 산하 지방대체복무위원회에, 박주민·이철희 안에서는 국무총리 산하 심사위원회에 부여했다. 위원회는 대체복무를 신청한 당사자나 주변인을 면담하는 등 ‘사실조사’를 거쳐 대체복무 편입 여부를 판단한다.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전해철 의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안의 상당 부분은 2007년 말 정부 안에서 합의됐던 내용이지만,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대체복무 도입이 백지화됐다”며 “올해 하반기에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논의해 빨리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헌재가 대체복무제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병역법 5조1항은 현역·예비역·보충역 등 병역의 종류를 규정한 조항이다. 내년 말까지 법안을 정비하지 않으면 2020년 1월1일부터 관련 조항이 효력을 잃게 되고, 병역을 부과하는 근거가 사라져 병역 집행이 공백상태에 빠지는 ‘대혼란’이 예상된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김선휴 변호사는 “헌재의 이번 결정은 국회가 빨리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하라는 강력한 데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 소식이 알려진 뒤, 여야는 모두 대체복무제 입법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방부와 국회는 헌재의 결정대로 조속히 병역법을 개정하여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각각 “적절한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을 위한 병역법 개정 논의를 해나갈 것”, “공정한 대체복무제 방안을 도출해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다 죄인이 되는 비극을 막아야 할 것” 등을 강조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대체복무제 입법에 나설 뜻을 밝히면서도 ‘병역법에 따른 처벌은 합헌’이라는 헌재의 판단을 더욱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개인의 신념보다 우선이라는 판단으로 이해한다”고 밝혔고, 바른미래당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자체가 국군 장병들이 ‘비양심적 병역이행’을 하고 있다는 오해의 소지와 거부감을 갖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입법 논의 과정에서 병역거부 용어는 물론 대체복무의 기간·분야 등을 놓고 공방이 예상된다. 김태규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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