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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존중 없는 일터의 위험

등록 2020-06-25 17:23수정 2020-06-26 02:37

김혜진 ㅣ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쏟아진다. 확진자는 몇명이 늘었고, 이동경로는 어떠한지, 완치자는 몇명이나 되는지, 그리고 수도권 대유행이 임박했는지 분석하는 기사도 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정보에 ‘노동자’는 삭제되어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바이러스의 영향은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법이다. 일터는 제대로 방역이 되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이 증상을 보였을 때 빠르게 검진을 받고 자가격리를 할 조건이 되는지, 아플 때 쉴 수 있는지, 감염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때 생존에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따라 코로나19는 더 확산될 수도 있고, 가라앉을 수도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수많은 지침은 노동자들에게는 쓸모없을 때가 많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하지만 출퇴근 대중교통은 늘 만원이다. 학교의 방역 상황은 매일 보도되지만 일터가 제대로 방역이 되고 있는지는 관심거리도 되지 못한다. ‘아프면 쉬라’고 말하는데 쉬려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이 말은 참으로 허망하게 들린다. 많은 노동자가 밀집해서 일하는 현장에서 거리두기는 어떻게 가능한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코로나19 감염자가 쿠팡 노동자이거나 콜센터 노동자였을 때에야 이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했는지를 간단하게 비출 뿐이다.

지난 5월23일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일한 노동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부천 물류센터는 현재 폐쇄되어 있지만, 쿠팡발 확진자는 150명을 넘어서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피해 노동자 모임’을 꾸리고 회사 쪽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 노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케이(K)-방역의 성공이 얼마나 운에 의존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쿠팡 부천 센터는 1천명이 넘는 인원이 한 공간에서 일을 한다. 냉동창고에서 일을 하는데 방한복이 모자라서 돌려서 입었다. 하루에 네번 마감 시간이면 층을 가리지 않고 급한 라인에 달려가서 일을 한다. 종교시설이나 클럽만이 아니라 이런 일터가 위험했다.

단지 밀집해서 일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을 언제라도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2020년 3월에 문을 연 쿠팡 부천 물류센터는 3개월 계약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섞여서 일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언제라도 교체될 수 있었다. 회사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튿날에도 새로운 일용직 노동자들을 불러 일을 시켰다. 어느 라인에서 일하는 누가 감염되었는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노동자들은 스스로 대처할 수 없었다. 업장 폐쇄를 통보한 25일 저녁까지 노동자들은 불안해하며 우왕좌왕했다.

쿠팡은 부천 센터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후 닷새 만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며, 배송 직원 및 상품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는 내용이었다. 쿠팡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가족이 사경을 헤매는 노동자도 있는데 말이다. 쿠팡 노동자들이 피해를 증언한 기자회견 이튿날 쿠팡이 입장을 내놓았지만, 그때에도 사과는 없었다. 허술하게 방역을 하고 노동자들을 방치한 것에 대해 증언하는 노동자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데, 사실이 아닌 내용들을 해명이라고 내놓았다. 이렇듯 기업이 노동자를 무시하니 노동자들은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소모품 취급을 받던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쿠팡은 지금이라도 피해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피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감춰져 있던 일터의 현실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일터가 안전해야 사회 전체가 안전해진다. 아파도 쉴 수 없고, 안전하게 일할 수 없으며, 위험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불안정한 일터를 바꾸기 위해 이제는 사회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함께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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