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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한탄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

등록 2020-05-14 18:35수정 2020-05-15 02:38

김혜진 ㅣ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이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영정사진을 눈에 담는다. 4월29일, 이천의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38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언론에서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고 말한다. 이 말에 소름이 돋는다.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않았고, 살 수 있었는데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 해 2400명이 재해로 사망한다. 아마도 이 죽음들 모두에 대해 언론은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이제는 ‘막을 수 있었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방치한 책임자를 찾아 38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런데 참사의 원인을 밝힌다는 것은 발화의 원인을 찾는 것일까, 왜 유독가스가 발생했는지를 밝히는 것일까. 그것도 중요하지만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왜 건설현장은 위험하다고 말하면서도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는지, 왜 노동자들은 그 위험현장에서 작업 중단을 요청하지 않는지, 왜 대다수 공사현장에서는 동시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왜 현장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밝혀야 한다. “왜?”라고 계속 질문하여 구조적 원인이 드러나게 해야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진다.

안전에 필요한 공사 비용과 공사 기간을 결정하는 것은 발주처이다. 안전한 작업장을 위한 조치들은 시공사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거의 지지 않는다. 협력업체들은 최저가 낙찰로 들어와 안전에 대한 권한도 여력도 그다지 없다. 결국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당한다. 지시는 늘 위에서 아래로만 향하고, 노동자들은 여러 업체로 분산되어 서로 소통하기 어렵다. 지하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 환풍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도, 위험한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도 노동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는 시정하라는 문서만 보낼 뿐이다.

문제는 이것이 ‘관행’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참사가 발생하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이 구조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참사는 반복되었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관행과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책임과 권력이 있는 자들, 즉 원청의 최고경영자에게 죽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기업에 벌금을 크게 물려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과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조장하거나 용인·방조하는 기업의 문화 그 자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와 시민이 사망했을 때 기업의 최고책임자와 기업을 강하게 처벌하고, 안전관리를 담당한 공무원도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고 노회찬 의원이 죽음의 일터를 바꾸고자 이 법을 발의했으나 19대와 20대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인들이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될 목숨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21대 국회에서는 이 법이 반드시 제정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 이윤 활동의 부작용 정도로 취급되었다. 사법부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산재사망은 ‘처벌받아야 할 기업 범죄’임을 기업이 알게 되기를 바란다. 생명보다 이윤을 중히 여기는 기업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가 명복을 비는 38명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유가족들의 고통도 아프게 느껴진다. 이런 고통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노동자와 시민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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