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의 ‘쿠팡, 라이더도 위험하다’ 기자회견에서 쿠팡 이츠 라이더 김영빈(37)씨가 발언하고 있다. 전광준 기자
‘20분’. 쿠팡 이츠(쿠팡의 배달중개 플랫폼) 라이더용 앱이 표시한 배달 시간이다. 그러나 라이더 김영빈(37)씨의 휴대전화 지도 앱은 적어도 30분이 걸린다고 알렸다. 쿠팡이 제시한 시간을 넘어 도착하면 평점이 깎인다. 평점이 깎이는 걸 걱정한 김씨는 비오는 저녁이지만 속도를 높여 차 사이사이를 급하게 빠져나갔다. 엇, 하는 순간 빗물 때문에 김씨의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헬멧 유리가 날아가고 오른쪽 팔꿈치에서 피가 났다. 고객이 주문한 아메리카노도 엎어졌다. 쿠팡에 연락하니 ‘상품은 괜찮냐’는 질문부터 돌아왔다.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김씨는 따로 쿠팡에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치료는커녕, 엎어진 아메리카노 5잔에 해당하는 1만4천원을 자기 돈으로 부담했다.
배달원 사고 유발 위험이 높은 ‘피자 30분 배달제’가 2011년 폐지되고 10년이 지났지만 쿠팡이 여전히 배달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잡아 라이더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라이더유니온은 16일 오전 11시 서울시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라이더도 위험하다’ 기자회견을 열어 라이더의 안전을 위협하는 쿠팡을 비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내비게이션 상 도착 예상시간에 비해 쿠팡이 정해놓은 배달완료 시간이 짧아 교통 법규를 위반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쿠팡은 라이더 평점시스템을 통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라이더에게 배차 기회를 주지 않는데 얼마 전까진 ‘약속 시간 내 도착율’이라는 평가 항목까지 둬 배달완료 시간을 강제했다.
쿠팡이 제시한 지나치게 짧은 배달시간 압박에 운전하다 넘어져 긁힌 김영빈씨의 헬멧. 김영빈씨 제공
11일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 기자회견 뒤 박정훈 위원장이 쿠팡 관계자에게 ‘쿠팡 이츠 대화요청서’를 건네고 있다. 전광준 기자
빠듯한 배달 시간으로 쿠팡 이츠 라이더들이 느끼는 압박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라이더유니온이 공개한 쿠팡 라이더 커뮤니티 글을 보면, 라이더들은 “홍은동에서 충정로역까지 내비(내비게이션)로 13분인데 10분을 준다. 내가 오천원 벌자고 이렇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이러다 뒤지면(죽으면) 쿠팡에서 아는 척이라도 해줄까”, “사고나면 책임도 안 진다”, “내비로 25분 나오는데 배달시간 20분 주더라고요. 아파트 14층인데”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평점이 안 좋으면 쿠팡 라이더용 어플이 빨간색으로 바뀌며 ‘영구정지’ 상태로 바뀌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다. 빠르게 배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쿠팡 쪽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기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산재를 유발할만큼 배달시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또한 쿠팡 이츠 라이더는 산재보험 가입도 불가능하고 사고가 발생해도 음식값뿐만 아니라 본인의 치료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실제 쿠팡은 ‘배달할 때 사고가 발생해도 모든 책임은 라이더에게 있다’고 계약서에 명시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나온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지난해 쿠팡 매출이 7조원을 돌파했는데 노동자 안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며 부당하게 취득한 돈이 아닌지 묻고 싶다”며 “사업주로서 안전보건 조치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11시30분께 쿠팡 관계자가 박정훈 위원장이 건넨 ‘쿠팡 이츠 대화요청서’를 받아갔다. 박 위원장은 “2주 전부터 대화 요청을 했지만 이제야 대화요청서를 받아갔다. 26일까지 노조와의 협의 테이블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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