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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기성 정치문법 흔드는 밀레니얼 세대

등록 2020-01-16 17:57수정 2020-01-17 09:34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선거의 시간이 다가온다. 혼돈은 여전하다. 바뀐 선거제도, 불능의 정치에 대한 심판 정서 등이 얽히면서 21대 총선이 어느 방향으로 귀결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선거부터는 만 18살로 선거연령이 낮아진다. 선거 공간에 밀레니얼 세대가 대거 유입되면서 유권자 지형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20대 남성의 보수적 변화를 뜻하는 ‘이대남’ 현상이 우리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던진 바 있다. 밀레니얼 유권자들, 그들은 누구이며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까?

선거연령 인하가 가져올 효과를 예측하려면 20대 초반 세대에 집중해야 한다. 마침 지난해 11월 서울시 청년청이 만 19~39살 서울 거주 청년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20대 초반은 청년세대 내에서도 가장 경쟁 지향적이며 물질적 성취를 중시한다는 게 요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조사는 청년이 원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물었다. 20대 초반은 ‘능력 차를 보완한 평등사회’보다 ‘능력 차를 인정한 경쟁력 중시 사회’를 선호했고, ‘연대와 협력’보다 ‘경쟁과 자율’을 중시하는 경향도 뚜렷했다. 분배보다 성장을 선호했다. 이런 경향은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물론 20대 후반이나 30대 등 청년세대에 견줘도 강력했다.

또 하나 중요한 발견은 이런 인식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라는 점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2015년 8월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어 비교해보니, 20대 초반 청년들의 경쟁과 성장 중시 경향이 4년 사이에 확연히 증가했다.

이런 변화는 청년들이 경쟁의 격화 등 시대적 변화에 조응해 생존주의 가치를 내면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학자 김홍중 서울대 교수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마음 상태, 즉 ‘생존주의’를 청년세대의 특징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들이 ‘규칙’과 ‘절차’ 등 절차적 공정성을 신봉하는 것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작은 차이가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공정성이라도 진보가 중시해온 결과적 공정성, 분배적 공정성은 이들의 관심사에서 비켜나 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선거연령 인하 효과는 ‘청년보수층’을 더 두껍게 하면서 보수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젠더에 따른 인식차가 선명해 같은 세대라도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경쟁과 성장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계층 간 차이도 뚜렷했다. 짐작하다시피 부유한 20대일수록 경쟁과 성장을 선호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젠더, 계층 등 정체성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지는 20대(초반)의 ‘분절화’ 경향은 정치의식으로 가면 더 선명해진다. 한겨레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신년 조사를 보자.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에 대한 질문에서 20대 남성은 부정평가(47%)가 긍정평가(34.7%)보다 높지만 20대 여성은 긍정평가(44.7%)가 부정평가(26.4%)를 압도한다.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독주와 실정을 바로잡기 위해 야당에 투표해야 한다’와 ‘적폐 청산과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해 여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20대 남성은 ‘야당 투표’ 40.2%, ‘여당 투표’ 46.3%로 엇비슷하게 응답했지만, 여성은 ‘여당 투표’가 66.8%로 압도적이었다. 이처럼 같은 20대라 할지라도 여성과 남성의 정치인식은 매우 다르다. 30대, 40대 등 다른 연령층과 비교해도 젠더에 따른 인식 차이가 매우 커 한 집단으로 묶기 어려울 정도다.

분절성, 파편성이야말로 20대를 관통하는 특징일지 모른다. 이들은 성별, 부모의 자산 등에 따라 분절적으로 존재하며 정체성도 제각각이다. 보수, 진보 등 기존의 틀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각 개인의 정체성도 다층적이다. 경쟁과 성장을 중시하며 젠더 이슈에 보수적인 청년 남성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대는 ‘엔(n)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20대를 잘 안다며 들이대는 기성의 정치문법이 이들에게 통할까? 어렵다. 감성적 정치광고나 인재 영입식 이벤트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낮은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내친김에 우리 정치의 근본 자세를 바꾸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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