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청암홀에서 서울시 청년청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로 열린 미래세대 권익 보호를 위한 세대 간 격차 해소 토론회에서 신광영 중앙대학교 교수(왼쪽 넷째)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전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해 연말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김난도 교수)는 올해 한국사회의 예상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밀레니얼 가족’을 제시했다. 1980년대~2000년 사이 태어나 현재 20대~30대를 가리키는 ‘밀레니얼 세대’는 향후 한국사회를 이끌게 될 주역이자, 현재 사회변화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실제 올 하반기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조국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세대’가 크게 주목받았고, 이들의 시각에서 기성세대를 분석한 <불평등의 세대>, <386 세대유감>이 출간돼 학계에서 세대론 논쟁이 일기도 했다.
이제는 정치도, 기업도 이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들 세대를 다룬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를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 이 책 표지에 나온 문구는 이렇다. ‘얘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세대균형지표 개발 작업을 진행중인 서울시 청년청이 그런 청년들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최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시내 거주 19~39살 1만명과 기성세대인 40~64살 1500명을 설문조사(온라인 패널방식)했다. 설문에서는 공정성 등을 둘러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런 차이가 최근 더욱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년세대 내 격차도 심각했다.
■
성장·경쟁 중시 성향 더욱 강화돼
청년층은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할까. ‘분배 중시 사회’(-3)와 ‘성장 중시 사회’(+3) 사이에서 고르게 한 결과, 청년세대 평균 답은 +0.47이었다. 성장 쪽에 무게를 둔 셈이다. 기성세대(+0.19)도 성장 쪽이었지만 선호 정도는 덜했다. ‘능력 차를 보완한 평등사회’와 ‘능력 차를 인정한 경쟁력 중시 사회’ 가운데서도 청년들(+0.55)은 기성세대(+0.44)보다 더 경쟁사회를 선호했다. ‘연대·협력’과 ‘경쟁·자율’을 두고서도 중립에 가까운 기성세대(+0.04)와 달리 청년세대(+0.16)는 경쟁 쪽으로 기울었다.
‘세금을 많이 내고 위험에 대한 국가책임이 높은 사회’와 ‘세금을 적게 내고 위험에 개인책임이 높은 사회’를 두고서는 청년세대(-0.31)는 전자 쪽을 선호했지만, 그 정도는 기성세대(-0.36)보다 덜했다. 청년들은 분배보다 성장, 평등·연대보다 경쟁을 선호하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성세대보다 미덥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가치관 비교 1 (자료:글로벌리서치)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가치관 비교 2 (자료:글로벌리서치)
청년세대의 이런 인식은 최근 몇년 사이 더욱 심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2015년 8월 20~34살 서울 거주 청년 332명(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당시 분배와 성장 사이에서 청년들은 사실상 중립(+0.01)에 섰고, 평등보다 경쟁을 선호했지만 그 정도(+0.14)는 이번(+0.55)보다 훨씬 낮았다. 연대와 경쟁을 두고서는 이번 조사(+0.16) 때와 달리 연대(-0.17)를 선호했고, 세금을 더 내더라도 국가보장이 많은 쪽을 선택한 비중(-0.61)도 이번(-0.31)보다 더 많았다. 표본 수와 조사대상 연령층에서 차이가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경쟁과 성장 등 보수적인 덕목들을 선호하는 서울 청년들의 경향성이 더욱 강화된 셈이다.
가치관의 차이는 일상 또는 주요 현안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어졌다. 팀 작업을 한 경우 ‘팀원 모두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이 공정’(-3)과 ‘기여도가 다른데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은 불공정’(+3)하다는 설문에 기성세대(+0.14)는 중간에 가까웠지만 청년세대(+0.82)는 확실하게 후자 쪽에 섰다. 협동을 이유로 한 무임승차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면 일정한 자격조건을 충족시키면 정규직화하는 게 공정하다’(-3)와 ‘동일한 일을 해도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규직화하는 것은 불공정하다’(+3점) 사이에서도 기성세대(-0.01)는 중립적 견해를 보였지만 청년세대(+0.27)는 후자 쪽에 섰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처우의 평등보다,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같은 관문(시험)을 거쳤어야 한다’는 시험 앞에서의 평등을 중시하는 셈이다. 이른바 절차적 공정성이다.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 (자료:글로벌리서치)
이는 지난해 초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 때 확인된 바 있다. 대회 개최 직전 정부가 북한과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20~30대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크게 일었다. ‘열심히 노력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선발된 국가대표 선수들이 왜 링크에 서지 못해야 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과거 남북 단일팀 구성은 전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이제 젊은층은 이념이나 애국 등 거대한 가치를 이유로 개인이 왜 피해봐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 논란 때 유독 젊은층 사이에서 비판여론이 높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올해 취업에 성공한 서아무개(26)씨는 “학창 시절 집과 학교에서 주입받은 삶의 목표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기’였다. 각자 노력한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졌는데 성적이 높든, 낮든 내가 경쟁해서 얻은 결과였기에 모두가 받아들였다”며 “그런데 입시나 취업 때 누가 부모 도움이나 (장애인, 지역출신 등에) 가산점을 받는다고 하면 왠지 불합리한 것 같고, 내 노력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청년층 내부 계층격차 해소책을
결혼·출산, 주거, 계층이동성 등 문제를 두고서도 세대 간 시각차는 확연했다. ‘사회적 환경은 내가 원할 때 결혼하기 어렵다(어려웠다)’, ‘사회적 환경은 내가 원할 때 아이 낳기 어렵다(어려웠다)’ 항목(1~5점 척도)에 청년세대(3.68, 3.85)는 동의한다는 쪽이 많았지만, 기성세대(2.79, 2.74)는 반대였다. ‘내 능력과 노력으로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다(있었다)’에도 기성세대(3.14)는 긍정하는 쪽이었지만, 청년층(2.73)은 반대였다. 계층상승과 패자부활 가능성(1~7점 척도)을 두고서도 기성세대는 (4.35, 4.36)는 긍정하는 반응이 많았지만, 청년세대(3.44, 3.42)는 부정 답변이 우세했다.
설문에서는 세대 간 차이만큼이나 청년층 내부 계층 간 차이도 확인됐다. 본인이 느끼기에 경제적으로 상층(1358명) 청년들은 하층(3260명) 청년들보다 유학 경험(37.5%, 27.1%)은 물론, 기업·공공기관 등에서 인턴 경험(39.2%, 25.5%), 공무원시험 준비 경험(27%, 17.5%) 등이 많았다. 설문조사를 총괄한 글로벌리서치 김태영 이사는 “취업준비를 위해 시간을 더 쓰고, (시간 들여) 공무원시험을 준비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경제적) 자원이 있다는 것“이라며 “부모세대가 가진 경제 격차가 이런 식으로 (청년세대에게)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의 차이로 인해 하층 청년층은 취업시 상층보다 20%가량 적은 급여를 받았다. ‘건강하다’와 ‘수면시간이 충분하다’(1~5점 척도)에도 하층은 2.85와 2.78로 부정적 답변이 더 많았지만, 상층은 3.57과 3.39로 반대였다. ‘어려움에 부닥칠 때 주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 같나’는 질문에 부모라고 답한 비중이 상층은 60.6%였지만 하층은 46.1%로 낮았다. 대신 친구를 찾는다고 답한 비중은 하층(22.8%)이 상층(19.2%)보다 많았다. 하지만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친구 수는 상층 4.3명, 하층 2.6명이었다. 결국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청년세대의 수입과 미래 전망은 물론, 건강과 사회적 자본(네트워크)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세대균형지표 개발을 위해 설문을 설계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청년층은 피해자, 기성세대는 가해자라는 세대갈등론을 넘어 기회와 가능성의 균형을 의미하는 세대균형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며 “아울러 세대 내 불평등 문제도 심각한 만큼, 청년세대 안에서 경제적 격차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