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l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참 기묘한 선거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이 도처에서 무력감을 호소한다. 코로나19가 다른 이슈를 몽땅 집어삼킨 특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선거 공간에서 표출되기 마련인 정치적 열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례 하나만 짚어보자. 모든 정치세력이 앞다투어 내세우던 청년 이슈가 아예 실종됐다. 총선은 한 사회의 총노선을 정하는 총회다. 총회 뒤에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까? 무지한 채 투표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중후반기의 총선은 통상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를 겸한다. 심판 욕망이 위력을 떨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악화하던 3월 초까지만 해도 역시 그런 듯했다. 경제 불만족,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공정성 논란은 상수였다. 비례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돌출 변수까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조차 이탈하는 흐름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금 각종 지표는 더불어민주당 우위를 점친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과 10~15%포인트의 지지도 격차로 고공행진 중이다. 코로나19 대응에서 한국이 세계의 모범국으로 부상하면서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프레임이 힘을 얻었다. 반면 공동체의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던 무책임한 야당은 존재감을 상실했다. 보수 야당·언론은 사실상 정권 붕괴를 선동했다. 공동체의 재난에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다고 자인한 셈이다. 자업자득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과반 승리는 무난해 보인다. 보수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저 세력의 패배는 사필귀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총선 결과가 우리 정치의 품격을 높이고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지는 미심쩍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정치가 대개 정략과 공학, 꼼수와 협잡으로 얼룩진 건 사실이다. 정치 혐오의 근거다. 그 진흙탕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이 정책과 노선 속에 희미하게 빛나곤 했다. 정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번 총선에선 그 희미한 빛마저 사라졌다. 통합당은 코로나 사태에 편승해 증오와 공포를 부추기다 자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탄핵 세력이 1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공포를 조장했다. 자기가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성정당으로 파탄 냈다. 그래도, 어쩌면 그래서 승리할 것이다. 왜 승리해야 하는지 불분명한 채로.
애초 이번 총선의 핵심 의제로 예상되었던 것 중 하나는 ‘청년’이었다. 청년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가로지르는 핵심 이슈라는 데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 게다가 만 18살로 선거연령도 낮아졌다. 지금 총선에서 청년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김종인, 이해찬, 손학규 같은 이들이 있다. 선거에 대한 청년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23~24일 전국 18살 이상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적극적인 투표 의사를 나타낸 비율이 다른 연령층은 4년 전보다 상승한 데 반해 20대만 55.4%에서 52.8%로 하락했다.
양대 정당의 이번 총선 전략은 ‘작은 정치’였다. 공포를 선전해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소외된 이들, 대표되지 않는 갈등들, 배제된 이슈들로 정치를 넓히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종됐다. 정치에 대한 열망과 의지의 고양이라는 정공법 대신 환멸을 조장하고 냉소를 방치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놀랍기도 하다. 정치가 환멸을 조장하는 시기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놀랍게 역동적이다. 코로나19로 세계의 질서가 붕괴하는 와중에 시민사회는 자기 절제와 연대의 윤리를 고양했고, 정부는 최대한 투명하게 시민사회의 요구와 소통하며 책임을 감당했다. 외부를 향한 혐오가 없지 않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 같다. 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의 저변은 깊고 단단했다. 바로 촛불혁명의 지반이다.
그래서 총선 이후가 정말 중요하다. 승리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코로나19 방역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야 한다. 거대한 경기침체와 사회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실업자가 쏟아지고 시민들이 고통받을 것이다. 과감한 예산 편성, 공공성의 획기적 증대 등 그야말로 정치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의 시간’이다. 정당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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