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노총과 철도파업 노동자 , 고려대학을 중심으로한 대학생들과 시민 사회단체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관권부정선거규탄 및 철도민영화저지 촛불대회’를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갈수록 가관이란 말은 이런 때 쓴다. 코레일 사장이란 이의 행태가 그렇다.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 운운으로 단숨에 ‘올해의 역겨운 말’에 등극하더니 여세를 몰아 어린 자녀를 포함한 조합원 가족에게까지 파업 중단 촉구 문자를 발송하는 파렴치한 신공까지 선보인다. ‘어머니’란 단어가 오물을 뒤집어썼다는 개탄과 ‘노동자가 니 새끼냐?’는 등의 힐난이 이어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외려 전국적 인물이 되었음을 한껏 이용하는 눈치다. ‘우리 국민들은 불법파업으로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국민 호소문의 한 구절이 그 증거다. 3연타석 파울 홈런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폭발적인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의 패러디가 분명한데 그 수준과 의도가 한심 무인지경이라 혀를 차게 된다. 무엇보다 내용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파업에 대한 시민 반응의 측면에서 보면 이번 철도노조 파업은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혁명적 분기점에 가깝다. 이토록 광범위하게 많은 시민들이 파업을 지지한 기억이 없다. 민영화를 막기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안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불편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대선 전부터 국민의 70%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코레일에선 민영화가 아니라며 답답해하지만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54.1%는 수서발 케이티엑스가 철도 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라고 답했다. 민영화와 무관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국회의원들은 무려 65%가 민영화의 과정이라고 답했다. 그러니 철도노조 파업이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국민경제에 피해를 주는 전혀 명분없는 일’이라는 말이 와닿을 리 없다.
일부 언론들은 늘 하던 대로 ‘국민의 발을 볼모로 한 노조 이기주의’를 앵무새처럼 되뇐다. 30년 전 기사나 지금이나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파업하니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곤 관행적으로 ‘시민 불편’ 프레임을 들이민다. 칼에 베였는데 아프지 않으냐고 묻는 격이다. 상처 나면 아프고 밥 안 먹으면 배고프다. 누구나 그렇다. 그걸 뉴스라고 토끼몰이 하듯 보도하는 작태는 한심스럽다.
비행기에 탄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광경을 목도할 때가 있다. 기압 차나 환기 문제 등에서 비롯하는 신체적 불균형 때문이다. 아기는 자기 불편함을 표현할 수단이 울음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옆에 있다 보면 아기 울음 때문에 불편함과 짜증이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어른이라면 당연히 견디거나 아기의 부모에게 도움을 주면서 함께 방법을 찾는다. 무릇 사람 사는 사회의 작동 원리가 그렇다.
세상에 아무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는 파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편한 게 당연하다. 대구의 한 지역에선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펼침막이 쉰 개 넘게 걸렸다 한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마음을 포갠다. ‘불편해도 괜찮아, 철도파업 이겨라’ ‘나중에 닥칠 큰 곤란을 막기 위해 지금의 작은 불편을 기꺼이 참겠습니다’.
유럽 많은 나라에선 파업에 따른 불편을 민주시민으로서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비용으로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선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계층이므로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이번 파업 기간 중 ‘열차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란 안내방송을 듣던 한 시민이 했다는 혼잣말을 듣다가 목울대가 후끈했다. ‘겨우 15분 늦었는걸요. 당신들의 파업을 응원합니다.’ 겨우 1시간, 겨우 4시간이라고 말하며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 사는 사회에 다가간다고 우리는 믿는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을 응원한다. 걱정 마세요. 견딜 수 있고 말고요. 기꺼이.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이명수 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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