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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안산시민으로 산다는 것

등록 2017-11-06 17:58수정 2017-11-06 19:07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운영위원장

세월호 사건이 터진 다음달에 아내와 함께 안산으로 이주했다. 무언가 해야 할 거 같아서였다. 종일 유가족을 만나 상담하던 아내는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물속에 함께 잠겨 있는 느낌’이라며 자주 울었다. 어떤 밤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막막함에 둘이 함께 울었다. 안산에 거주하고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안산에서 2년을 살았다.

고통의 진앙지에 가까울수록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난 4년 안산시민들이 겪은 고통이야 더 말할 게 없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시민들은 밥 한술 떠넘기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 누룽지를 끓여 먹였고 남은 아이들을 돌봤고 팽목항으로 유가족들을 실어 날랐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 공동운명체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안산의 이웃들이 좀 더 잘하면 좋겠다면서 각성을 촉구한다.

좀 거칠게 비유해서 안산시민들은 병든 부모님을 모시는 시골의 막내아들과 비슷하다. 대처에 사는 형제들은 이왕 모시게 됐으니 더 참고 잘하라 말한다. 말은 쉽다. 일상적인 고통과 실질적 부담은 막내아들 몫인데 자기들은 멀리서 생색만 내거나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 질책까지 한다.

4·16안전공원을 화랑유원지 내에 조성하는 문제로 안산 지역이 갈등 중이다. 유가족을 포함한 찬성 쪽 시민들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자라던 지금의 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 내에 4·16안전공원이 세워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일부 시민들은 반대한다. 반대하는 안산시민들을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비난하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안산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최대 피해지역이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된 의제로 다루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현안이 생기면 상처나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억울한 일을 당했다. 그렇게 자기 억울함이 하늘에 닿아 있는 사람들 곁에 있다 보면 그 억울함이 또 다른 종류의 억울함을 만들기도 한다. 억울한 이들 곁에서 그들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안산시민들의 억울한 마음을 들어주는 일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내 입장은 4·16안전공원이 화랑유원지 내에 세워져야 한다는 쪽이다. 한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지금 여덟 지역에 흩어져 있다. 반대하는 이들의 불편함도 이해할 수 있고 고통에 등급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억울한 마음을 가진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유가족들은 원하는 모든 걸 이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 알다시피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다 가졌어도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다. 영구박탈을 당한 사람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잘못도 없이 내가 이웃에게 민폐만 끼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걸 무슨 수로 견디나. 유가족들이 지금 그렇다. 그럼에도 그들은 안산을 떠날 수 없다. 아이와의 모든 것이 안산에 있고 결국 그곳에서 삶을 견뎌야 한다. 화랑유원지 내 4·16안전공원을 오매불망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공황장애로 차도 타기 어려운 유가족 엄마가 있다. 지금도 어릴 적부터 아이와 산책하던 화랑유원지를 매일처럼 간다. ‘저는 차를 탈 수도 없으니 아이가 고향에 돌아오듯 화랑유원지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한밤중에 보고 싶을 때 슬리퍼 끌고라도 얼른 가죠.’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나.

4·16안전공원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은 고통의 공동운명체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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