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인권운동을 오래 한 까마득한 선배님을 만났을 때다. 술잔을 채워주시며 “뭐 하는 청년인고?” 물으시기에 겸손한 표정으로 청년당사자운동을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 나이대 활동가 선배들에게 ‘세대문제’는 운동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세대보다 계급이 우선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표 논객 몇명과 재현의 대상으로서 장면만 남겨놓게 된 이 담론은 그래서 지금 주인이 없다.
주인 없는 판에는 장사꾼도 꼰대도 생겨난다. 최근 철도노조 민영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연달아 각 대학에 붙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여전히 어떤 운동권은 신문을 팔았고, 서명운동을 하고, 사람을 조직할 수 있다며 집회를 하고, 문화제를 열었다. ‘피시’(PC·플래카드) 쓰는 법을 가르쳐 캠퍼스를 덮었지만 취업설명회 펼침막 사이에서 바람에 날릴 뿐이었다.
자보체로 글을 쓰는 선배들, 나는 그들 중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이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2013년, 사진이 된 대자보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찌라시보다 빠르게 퍼져 나간다. 페이스북 페이지 ‘안녕들 하십니까’는 개설 이틀 만에 14만명의 ‘좋아요’ 구독자가 생겼다.
시대정신을 성찰하는 20대가 소환되고 스스로 또래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은 그 자체로 울림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 운동을 흥미롭게 보고 있지만 동시에 이 방식이 얼마나 ‘새롭지 않으며, 성공하기 어려운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운동이 그러하듯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지켜보며 내 방식으로 필요한 일을 하거나 도울 것이다. 어차피 혁명가는 없는 시대, 그저 죽기 전에 내 한 손이라도 세상이 좋아지는 데 미약하게나마 일조할 수 있으면 족하다. 나와 다른 그 선배의 방식과 활동도 당연히 존경한다.
그런데 누군가 요즘 분위기가 4·19 전야 같다고 말한다. 이유는 몰라도 불편했다. 나는 4·19를 겪은 적이 없다. 누군가 대견한 청년들이라고 말했다. 불쾌했다. 당신이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이런 활동은 계속 존재했다. 대견한 이유는 ‘알려져서’밖에 없다. 이 발화의 대상은 청년들이 아니다. 청년들을 보고 대견해하는 4·19의 주역인 자신이 화자이자 청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활동가 선배는 ‘큰 회의를 느꼈다’는 내게 ‘얼마나 했다고 그러냐’고 물었다. 물론 선배의 말이 맞다.
그러나 나는 그게 우리 세대의 방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성급할 수 있겠지만, 오래 버텼느냐로 증명 가능한 것이라면 어떤 세대든 절대 윗세대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모두에게 대학 시절도 지나온 한 시기일 뿐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기성세대에게 돌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견하다며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비상식과 불합리에 대해 세대와 계급을 넘어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의 언어로 재서술하고 원위치시킬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만이 선배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아직 사회시스템을 정확히 파악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지로만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또다른 메아리가 되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개념대학생 인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애써 대견해하지 않아도 이 청년세대는 더욱 어려워질 자신의 길들을 각자 알아서 갈 것이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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