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저스트 스톱 오일 활동가들이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는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저스트 스톱 오일
최우리 | 경제산업부 기자
‘아니, 고흐 그림에 토마토 수프를?’
최근 기후활동가 2명이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걸린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던졌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다른 이들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앞에서 이물질을 묻히고 그림 앞에 다가가는 시위를 했다. 또다른 이들은 오스트리아 빈 미술관의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 <죽음과 삶>에 검은색 액체를 뿌렸다. 그림 보호만큼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하니 화석연료 사용 중단에 함께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유리 액자 안에 있는 그림들은 훼손되지 않았다.
‘비폭력적이나 파괴적인’ 시위의 효과는 적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진은 그림을 대상으로 하고 출근길 차량을 막아선 기후시위에 대해 미국 시민 천 명씩을 대상으로 두 차례 설문을 한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응답자의 46%가 이러한 시위가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에 대한 지지를 감소시킨다고 답했다. 지지도가 올랐다는 답은 13%에 그쳤다. 40%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공화당·민주당 지지 등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온도차는 있었다. 지지가 줄었다는 공화당 지지자는 69%, 민주당 지지자는 27%였다. 무소속은 43%였다. 안타까운 것은 ‘화석 연료 사용과 공중 보건 위험’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 갖고 있던 기존 인식에도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같은 설문조사를 했다면 유사하거나 더 부정적 결론이 나왔을 것 같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진은 최근 기후시위에 대해 미국 시민 1천여명을 상대로 온라인·전화 병행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46%의 응답자가 기후변화에 대한 지지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대학 보도자료 갈무리
단지 사람들이 듣기 싫은 이야기를 불편한 방식으로 했기 때문에 이들이 지지받지 못한 것일까. 나는 꽤 많은 사람이 이미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5년 말 196개국 동의로,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파리기후협정이 체결됐다. 2020~2021년 세계 각국에서 연이어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 선언이 이어졌다. 기후대응 필요성에 대한 수차례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경제산업적으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은 지난해 3월 “기후변화는 2008년 금융위기의 기폭제 역할을 한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에 준하는 위협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나 천재지변이 현재의 사회 체제를 붕괴시킬 재난 상황을 부를 경우 관련 기업과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등도 연쇄적으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라’는 선언은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수년 사이 흥미롭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게 됐다. 오히려 답을 알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외면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당장 살기도 바쁘다는 이유로 현재의 편리함을 유지하게 하는 화석연료 기반의 생활을 바꿀 용기나 부를 축적하는 것 말고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을 접은 이들이 많다. 한 증권전문가는 “고집 센 사람들과 논리로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이야기”라는 제인 구달의 말로 기후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추운 겨울이 시작됐다. 우주의 시간뿐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로 인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됐다고들 한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을 경우 기후위기 대응과 같은 장기적 과제는 외면받을 가능성은 또 커진다. 화석연료를 줄여야한다는 당위를 말해도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근본주의·이상주의적 이야기를 한다’며 날 선 비판과 배제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기후운동이 더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아야 할 현실 역시 달라진 것은 없다. 기후시위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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