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4일 저스트 스톱 오일 활동가들의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는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저스트 스톱 오일
‘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전문가가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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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 각국 미술관에선 작품에 음식물을 끼얹거나 접착제로 신체 일부를 붙이는 방식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이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붓고, 모네의 ‘건초 더미’에 으깬 감자를 끼얹으며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데요. 파격적인 시위 방식을 두고 논쟁이 뜨겁습니다. 국외 시위 방식이 곧 국내에 수입되는 전례들에 비춰보면, 석굴암이나 이중섭 그림에 음식물을 끼얹고 시위를 하는 일이 등장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는데요. 논란의 배경과 짚어볼 점을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활동가 김한민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The 1] 기후활동가들이 왜 유명 예술품을 노리는 거죠?
김한민 작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에만 해도 기후위기 시위가 힘을 받고 있었어요. 등교 거부 시위를 했던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적 조명을 받은 것도 2019년이었고요.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 모든 게 멈춰야 했습니다.
대중들의 관심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럼에도 코로나 여파가 남아 대중이 모이기 어려운 환경에서, 미술관 시위라는 굉장히 색다른 방식이 등장했고 다시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거죠.
[The 2] 기후위기라는 메시지엔 동의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나요?
김한민 작가: 기후 위기는 정답이 있어서 그 정답만 찾으면 한 방에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세계 경제 시스템부터 사람들의 생활 방식까지 바꿔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라,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외면하는 문제에요. 그래서 누군가는 과격하게, 누군가는 온건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비판은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세력, 그리고 책임을 방기한 채 아무것도 안하는 이들에게 해야 합니다.
문화유산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자연유산도 소중한 거에요. 제가 일하는 시셰퍼드의 창립자 폴 왓슨은, 심해를 무참히 파괴하는 트롤 어업을 이렇게 비판했어요.
“누가 루브르 박물관에 포클레인을 끌고 들어가 작품들을 박살낸다면 당장 감옥에 갈 것이다. 전 세계 바다와 밀림에선 그런 일이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처벌은커녕 정부 지원을 받는다.”
[The 3] 시위가 더 과격해질 상황을 걱정하기도 해요. 그림을 정말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는.
김한민 작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 쳐요. 그래도 시위자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작품은 진품이 훼손됐다고 해서, 실제로 영국에 가서 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거예요. 이미 3D 기술로 다 기록이 되어 있고, 복제품을 만들어서 전시해도 대다수는 전혀 모를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연유산이죠. 수많은 동식물이 파괴되고 죽어가는데, 왜 이 일에는 경악하지 않느냐는 거에요.
지난달 23일 ‘마지막 세대’ 활동가들이 모네의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뿌리는 시위를 했다. AP 연합뉴스
[The 4] 작품을 훼손하지 않더라도 이런 방식의 시위가 기후위기 운동에 반감만 키울 수도 있잖아요? 작품을 훼손하는 상황에 이르면, 더 강해지겠죠.
김한민 작가: 기후가 붕괴되고 있다는 ‘맥락’을 보지 않으면 반감을 가질 수 있겠죠. 안중근 의사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지만, 일제 식민통치라는 맥락 안에서 한 행동이기에 칭송을 받잖아요. 지난해 2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두산중공업 본사 건물에 있는 ‘두산’ 영문 로고 조형물에 녹색 페인트칠을 했어요. 두산중공업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성 페인트라 시위 후에 다 지워졌는데도, 법원에선 활동가 2명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 200만원을 선고했어요.
페인트를 뿌리는 것과 기후 붕괴 시대에 석탄발전소를 짓는 것, 어떤 게 더 과격한가요?
물론 훼손까지 하게 되면 전체 기후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진 않겠죠. 하지만 저는 그것도 정당한 시위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착한 시위는 너무 많이 해왔어요.
[The 5] 왜 기후 위기 시위나, 기후 위기를 다루는 뉴스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걸까요?
김한민 작가: 사실 기후 위기만이 아니라 진지하고, 복잡하고, 해결책도 간단하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도 바뀌어야 하는, 골치 아픈 문제는 다 외면당하죠. 기후 운동은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걸 기본 조건으로 깔고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 운동은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계산해서 하는 게 아니라, 옳은 것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거에요. 인간으로서 지구에서 살고 싶은 이상, 하지 않을 수 없는 운동이기 때문에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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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