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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베를린 도심 출근길 막아선 ‘마지막 세대’…“기후 위기, 시간이 없다”

등록 2022-11-16 07:00수정 2022-11-16 09:38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1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고속도로(아우토반)에서 ‘마지막 세대’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독일 고속도로에 시속 100km 속도제한을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세대 제공
1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고속도로(아우토반)에서 ‘마지막 세대’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독일 고속도로에 시속 100km 속도제한을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세대 제공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세계기후총회(COP27)가 열리고 있던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환경운동가들이 몸으로 자동차를 막아섰다.

출근 시간대인 아침 8시께 베를린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보행 신호등에 불이 켜졌다. 10명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더니, 횡단보도 차량 통제선 앞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막아섰다. “정부가 (기후 위기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나?”라고 적힌 펼침막을 꺼냈다. 엄지손가락만 한 강력접착제 한 통을 손바닥에 바른 뒤, 콘크리트 바닥에 손을 붙였다. 그것도 모자라 접착제를 꺼내 손과 바닥 사이 벌어진 틈새를 채웠다. 이 모든 일은 신호등 초록 불이 켜진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다.

환경운동가 60명, 출근길 교차로 막아서고 “기후 비상사태” 외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마지막 세대) 소속 활동가 60명은 교차로로 진입하기 위한 4개 길을 같은 방식으로 막아섰고, 출근길, 네거리는 완전히 봉쇄됐다. 차량이 삽시간에 늘어났지만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빵∼’ 교차로는 차들이 울려대는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로 가득 찼다.

마지막 세대는 올 초부터 이런 ‘게릴라 시위’를 도시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은 특별히 오케스트라 단원 10여명이 교차로 중심에서 바이올린, 베이스, 플루트,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시위는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이후 경찰이 기름과 솔로 바닥에 붙은 활동가의 손을 일일이 떼기 시작했지만, 사실상 오전 내내 교통이 마비됐다.

이들은 도로를 몸으로 막아설 뿐 아니라 최근에는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 작품에 으깬 감자, 토마토 수프 등을 던지는 방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23일 마지막 세대는 베를린 포츠담에 있는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전시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 으깬 감자를 퍼부었다. 전 세계 언론이 이들의 활동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기후 위기에 무관심한 이들의 이목을 끌겠다는 목표 자체는 달성한 셈이다.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환경단체들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런던에 있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등 유명 작품을 활용해 비슷한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도로 점거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 리나(20)는 “우리는 정부가 기후 비상사태에 대처하도록 행동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길이 막혀서 사람들이 불평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래도 해야 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세대는 “어떤 운동이든 처음부터 대중적인 경우는 없다”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세계 10~20대 청소년·청년들의 연대 모임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도 초반에는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정부에 ‘9유로 티켓’(한 달 9유로에 무제한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의 재도입과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고속도로에 시속 100km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교차로 중심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교차로 중심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바닥에 접착제로 손을 붙이자, 경찰이 기름을 활용해 활동가의 손을 바닥에서 떼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바닥에 접착제로 손을 붙이자, 경찰이 기름을 활용해 활동가의 손을 바닥에서 떼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환경운동가들 시위 찬반 갈려…따가운 시선 많지만 ‘지지한다’ 시민도

이날 시위 현장 곳곳에서 시민들이 활동가를 향해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남성은 “너희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부끄럽지도 않냐”며 고성을 지르고 욕을 했다. 지난달 31일 이 단체의 도로 점거 시위로 응급구조 차량이 현장 출동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트럭에 치인 사고 피해자가 결국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도로 점거 시위 때문에 구조 작업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여론은 극도로 나빠졌다. 하지만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4일 소방대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시위로 인한 교통 체증이 피해자의 사망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차가운 시선이 많지만 이날 적지 않은 시민들이 활동가에게 직접 다가와 응원을 하거나 지지의 말을 건넸다.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가던 한 여성은 시위대에게 욕을 하는 남성에게 “지하철을 타면 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베를린 시민으로 중학교 역사 교사인 토마스 반카(44)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대는 최근 활동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여름 250명에 달했던 회원 수가 11월 현재 400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시로 온라인 강연을 하고 청원 서명 활동도 한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뒤 경찰의 제지를 막기 위해 강력 접착제로 콘크리트 바닥에 손을 붙였다. 경찰이 기름과 솔을 활용해 활동가의 손을 뗀 뒤 남은 흔적.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뒤 경찰의 제지를 막기 위해 강력 접착제로 콘크리트 바닥에 손을 붙였다. 경찰이 기름과 솔을 활용해 활동가의 손을 뗀 뒤 남은 흔적.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더 강력한 처벌” vs “현재 법으로도 충분” 정치인들 의견도 분분

마르코 부시만(자유민주당) 법무부 장관은 독일 주말지 <빌트 암 존탁>과의 인터뷰에서 환경운동가가 예술 작품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이는 데 대해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무장관을 지냈던 자유민주당 정치인 게르하트 바움은 처벌에 ‘신중히 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현재 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녹색당이 포함된 신호등 연정 내부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올라프 숄츠 총리(사민당)는 지난 5일 사민당 토론회에서 “교통 체증에 갇힌 사람들은 사안(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짜증만 내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 방식의 시위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일 발른 리서치 그룹이 한 설문조사 결과, 라스트 제너레이션의 행위에 반대하는 의견은 83%에 달한다.

지난 10일 연방 의회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2시간 가까운 토론이 이어졌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신호등 연정에서 대부분 이들의 행위에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보수 정치인은 서독 극좌파 무장단체 적군파에 빗대 이들을 “기후 적군파(RAF)”라고 비난한다. 녹색당 소속 로버트 하벡 연방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조차도 이들의 시위 방식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이들을 적군파와 같은 테러리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독일 남부 뮌헨에서는 이들 활동가를 재판 전 ‘예방적 구금’에 처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활동가 10여명은 재판을 받지 않았는데도 이달 초 30일 구금형을 받았다. 헤리버트 프한틀 <쥐트도이체 차이퉁> 칼럼니스트는 11일 칼럼에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자동으로 범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주체인 사람도 자동으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소 여부와 시기, 방법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개별 사례들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에른주가 현재 환경운동가들 예방 구금을 위해서 활용하는 법이 사실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는 지적도 보탰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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