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강한 소나기성 비가 내린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우리 | 경제산업부 기자
일상의 시름을 잊고 싶을 때 맑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볼 때나 허락된 사치다. 외부에 있을 때는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숨 막히는 열기를 피해 서둘러 건물 안으로, 그늘로 도망가고만 싶다.
“그래도 이번 주는 비가 와서 괜찮습니다.”
유독 더운 날이면 에어컨 없는 방을 떠돌며 지내고 있는 한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무탈한지 괜히 문자를 한번 더 보내본다. 이번주 내내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는 국제뉴스가 이어지자 다시 그가 생각났다. 지구 평균기온이 0.몇도 올라갔다는 뉴스는 내 삶에서 멀게 느껴지지만, 비가 와서 그나마 낫다는 누군가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오늘의 기후문제를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출퇴근 인구가 빠져나간 지하철 객실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노숙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불쾌함·불편함이 아닌 기후위기 속 인권 문제를 떠올리길 바란다.
기후변화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답답하고 무력해질 수 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지구와 관련한 기사를 쓰다가 소위 말하는, 뚜껑이 열렸다. 융합적 사고가 필수인 기후변화를 취재할수록 소통 부재와 분야와 분야 사이의 벽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중간지대에 있어야 하는 기자의 마음도 깨지고 지칠 일이 많았다. 다른 부서에 있을 때는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받았을 것 같은 나의 취재와 적극적인 의사 표현도 불필요한 일을 만드는 과잉된 열정으로 비칠 뿐이라는 점에서 좌절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떠올린 이들이 있었다. 온난화에 손님이 하도 없어 더는 하늘 보고 장사하기 싫다는 스키장의 식당 주인, 이상기후로 미래가 점점 불안하게 느껴지는데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청소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대기오염·온난화의 주범이 되었다는 발전소 노동자들, 점점 더 일하기 괴롭다는 야외 노동자들,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관련해 목소리를 키우는 에너지 전문가들과 기후 활동가들을 취재하면서 기후기사가 더 많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덕분에 무관심과 배제에도 상처받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불평등에 분노하고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표도 생겼다.
기후를 말하는 일은 보람 있었다. 전례없는 날씨와 기후에 적응해나가는 게 사회의 과제다. 이웃과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의 삶을 고민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해답을 찾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대를 기록하는 기자로서 느끼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 국가들의 전력망을 늘리거나 바꿔가면서 수주를 늘려나가는 전선 회사나 미래차로 전환 전쟁 중인 자동차 업계, 화석연료와 원자재 가격 추이와 거래를 취재하면서 누군가에게 기후위기가 돈과 힘을 거머쥔 기회라는 역설을 느끼고 있다. 섣불리 절망도, 희망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녹색 안경을 쓰고 기후문제를 다양한 이야기로 전하고 싶을 뿐이다.
3년 전 이 칼럼의 제목은 가수 헤이즈의 2017년 노래 ‘비도 오고 그래서’에서 따왔다. 비도 오고 그래서 네가 생각이 났다는 이별 노래인데, 나는 지구를 생각했다. 비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뿐 아니라, 기후라는 깔때기로 바라본 정치, 사회, 경제, 산업, 저널리즘 고민을 적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는데, 돌아보니 내가 가장 큰 위로를 많이 받았다.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기만 했다. 독자들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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