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의 활동가들이 10월23일(현지시각) 독일 포츠담의 바르베리니 미술관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연작 그림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끼얹은 뒤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라스트 제너레이션 제공 AP 연합뉴스
독일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의 시위를 둘러싸고 독일 사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지만, 도로를 점거하거나 예술 작품에 음식물을 던지는 등 시위 방식이 극단적이고 시민들 일상에 불편을 끼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들이 이런 시위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스트 제너레이션 회원인 마틸데 이르만(29), 릴리 슈버트(24)에게 들어봤다.
―유명 예술 작품에 으깬 감자나 토마토 수프 같은 것을 던지는 방식으로 시위했다. 어떤 의미인가.
“사람들이 (기후 위기로) 지구와 자연을 잃는 것보다 귀중한 예술 작품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으깬 감자, 토마토 수프를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보며 기후 위기를 연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후 비상사태는 홍수, 가뭄, 폭풍 등 자연재해만 일으키는 게 아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제한된 공간, 식량, 식수 등을 놓고 싸움이 벌어진다면 식량 부족, 내전도 일어날 수 있다.”
―도로를 막고 바닥에 접착제로 손을 붙이는 이유는.
“(경찰이) 우리를 끌어내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로에 몸을 붙이고 있으면 더는 시위자들, 궁극적으로는 기후 위기를 무시하는 것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정부에 구체적인 기후 위기 대책을 마련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지난 11일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예술 작품에 음식을 던지는 것은 물론 출근 시간 길이 막히면서 지각을 하는 등 실생활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이 방해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는 인기를 끌려는 게 아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거다. 지난 30년 동안 활동가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 경고하고 주의를 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삶을 구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 정부의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음식, 물이 부족해서 매일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의 죽음보다 어떻게 유리로 보호되는 그림이 망가질까 더 걱정할 수 있나. (‘마지막 세대’는 활동 개시 전 해당 그림이 유리와 액자 등으로 보호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지난해 아흐(Ahr) 계곡에서 난 홍수 때문에 2만8000개 예술 작품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나.”
―도로 점거 때문에 응급구조 차량 통행이 어려운 경우도 발생한다.
“우리는 응급 상황에 대비해 항상 길을 열어두고 있다. 여태까지 모든 도로 점거에서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도로를 막고 있는 활동가 가운데 중앙에 있는 최소 두 사람은 길을 비켜줄 수 있도록 아스팔트에 몸을 붙이지 않는다. 또한 활동가들이 고속도로에서 도로 표지판 다리에 올라갈 때는 경찰에게 도로, 안전 등 관리를 해달라고 미리 요청한다.”
―소속된 활동가는 얼마나 되고 활동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독일의 라스트 제네레이션은 매일 고속도로, 거리, 박물관, 정부 청사와 정당 앞에서 다양한 종류의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은 항상 평화롭고, 비폭력적이라는 강력한 전제 아래 이뤄진다. 이런 종류의 저항을 하다 체포될 용의가 있는 이들 50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언론 활동, 회담 조직 등을 담당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더 많다.”
―계속 비슷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인가.
“우리는 정부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안전 조치를 결정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9유로 티켓’(한달 9유로에 무제한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로 지금은 종료)과 시속 100km 속도 제한이다. (독일 고속도로에는 속도 제한이 없다.) 이러한 조치는 정부가 기후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마지막 세대’(라스트 제너레이션·Last Generation)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호 단체다. 영국의 ‘저스트 스탑 오일’(Just Stop Oil), 미국의 ‘디클레어 이머전시’(Declare Emergency), 캐나다 ‘세이브 올드 그로스’(Save Old Growth) 등 전 세계에 비슷한 조직이 있다. “기후 재앙에 직면한 상황에서 변화를 만들려면 시민 불복종 운동이 가장 효과적인 선택지라는 신뢰에 기반을 둔” 조직들이다. 이들은 모두 ‘A22 네트워크’라는 각 정부의 탄소 배출에 반대하는 국제적 조직과도 연대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에는 스웨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스위스,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서방 각국의 환경운동 단체들이 소속돼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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