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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여기는 키이우…19명이 숨진 공습 현장에서 보낸 낮과 밤

등록 2022-10-11 18:22수정 2022-10-12 12:27

현장 공포에 잠긴 키이우
북마케도니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10일(현지시각) 수도 스코페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우크라이나 폭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스코페/AFP 연합뉴스
북마케도니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10일(현지시각) 수도 스코페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우크라이나 폭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스코페/AFP 연합뉴스

“간밤에 무사하셨습니까.”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 공격’이 이뤄진 다음날인 11일(현지시각), 현지에서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았던 이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연락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며 마음을 놓았다. 현지인들은 갑작스러운 공습에 놀란 기자에게 “이것은 누구에게나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위로를 잊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시민 세르히는 “오늘은 사람들이 평소처럼 출근하고 있다. 이전에는 공습경보가 울려도 하던 일을 했는데 지금은 모두가 공습경보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현지의 한 한국 교민도 “이번 공습은 정말 달랐다. 몸으로 (전쟁의 참상을) 느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0일 공습 직후 지하 방공호로 쓰이는 지하철 흐레시차티크역으로 대피했던 <한겨레> 취재진은 그곳에서 다섯 시간을 머물렀다. 오후가 돼 시내 외곽으로 이동하는 차 창밖에 비친 키이우의 풍경은 침울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셰우첸코공원과 공습으로 피해를 본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 입주 건물이 있는 지역으로 접어드는 도로는 이미 차단돼 있었다. 빠르게 복구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갑작스러운 공습에 놀란 탓인지 군 검문이 강화됐다. 도시 중심부에서 30분 거리의 시내 외곽으로 이동하던 도중 소총을 멘 군인이 차량을 세워 스마트폰을 점검했다. 누군가 시설 좌표를 찍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간첩 활동을 예방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근처에는 관공서와 주경찰청, 산업 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전날 공습은 한차례에 끝나지 않았다. 외곽으로 이동하던 오후 3시께 다시 공습경보가 울렸다. 많은 이들이 다시 지하 대피소로 몸을 옮겼다.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의 도시 크리비리흐 등에선 두번째 공습을 받았다.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은 “러시아의 공습으로 국민 안전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께서는 가급적 신속히 출국하실 것을 권고드린다”고 알려왔다. 오후 3~6시 사이에 통신이 ‘끊겼다 이어졌다’를 거듭했고, 기간 시설이 파괴된 탓에 정전이 계속되다 저녁에나 전기가 재공급됐다. 단수도 1시간 정도 발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일 안전보장회의를 열어 “크림대교에서 일어난 8일 폭발은 테러”라고 단정하며, “오늘 아침 국방부 등의 제안을 받아 우크라이나의 에너지·군사·통신 시설에 대한 전면 공습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영토에 대한 추가 테러 공격을 시도할 경우, 러시아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는 전날 밤 키이우 중심부인 볼로디미르스카 거리와 셰우첸코 거리가 지나는 사거리에 나와 러시아의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들(러시아)은 평소대로 거짓말을 했다. 실제 (공격받은) 목표물들은 에너지 시설과 거리가 멀다. 여기서 수백 미터 가면 성 소피아 성당의 종탑이 있다. 저 건물이 세워졌을 때(1037년) 모스크바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조금 더 가면 볼로디미르 언덕이다. 이곳은 동유럽의 기독교 문화의 발상지이다. 내 옆에 있는 셰우첸코 대학은 이제 곧 190주년이 된다. 이 시설들이 러시아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린 군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다 할 것이다. 점령군들은 이미 전선에서 우리에게 대적하지 못한다. 그게 이들이 테러에 의존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전력 강화를 위해 ‘뭐든 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미묘했다.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에게 본격적인 고통을 안기려면 러시아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에 사정거리가 300㎞(190마일)에 이르는 육군 전술 미사일 시스템(ATACMS·에이태큼스)을 달라고 거듭 요구해 왔다.

하지만 공습 이후에도 미국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을 강하게 규탄한다”고 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 이후 발표한 자료에선 “첨단 방공 시스템을 포함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방어 무기만 공급할 뿐 치명적인 공격 무기를 제공하진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11일 주요 7개국(G7)의 긴급 화상 정상회의와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방장관·우크라이나 방어연락그룹(UDCG) 회의 때도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도 나름대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애초 푸틴 대통령이 단숨에 전술핵 등을 터뜨려 단번에 금지선(레드 라인)을 넘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가 다시 테러 공격을 감행하면 “그 위협에 상응하는(commensurate)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테러 공격에 핵을 사용하는 것은 상응하는 대응이라 할 수 없다.

러시아와 연합부대를 구성하기로 한 벨라루스도 전투에 직접 참가하진 않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빅토르 흐레닌 벨라루스 국방장관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연합부대 배치에 합의한 뒤 발표한 영상 메시지에서 “우리는 리투아니아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과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또 벨라루스가 자국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는 건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10일 공습으로 19명이 숨졌고, 전쟁은 계속되는 중이다.

키이우/임인택 기자, 신기섭 김혜윤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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