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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푸틴의 미사일…복수심 담아 강경파 보라고 겨울 노리고 쐈다

등록 2022-10-11 18:02수정 2022-10-12 09:45

1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구조대원이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어린이를 대피시키고 있다. 키이우/UPI 연합뉴스
1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구조대원이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어린이를 대피시키고 있다. 키이우/UPI 연합뉴스

“크림반도는 언제나 러시아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합병하는 조약에 서명하며 이 땅에 대한 한없는 집착을 드러냈었다. 4년 뒤인 2018년 5월엔 이 땅과 러시아 본토를 직접 잇는 크림대교 개통식에 참석해 직접 트럭을 몰았다.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계획해왔던 숙원 사업을 자신의 손으로 이뤄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이 다리는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합병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새로 선출된 고위 관리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새로 선출된 고위 관리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그런 만큼 8일 오전 크림대교에서 발생한 폭파 사건에 대한 대응 역시 신속하고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이를 ‘우크라이나 특수기관의 테러행위’라고 단정했고, 그 이튿날인 10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80여발의 미사일을 쏘는 보복에 나섰다. 그로 인해 무려 19명이 숨지고, 105명이 다쳤다. 폭파에서 보복까지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은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직접 잇는 크림대교(길이 19㎞)의 지정학적 가치는 매우 높다. 이 다리가 없으면 러시아 본토에서 반도로 갈 때 이번 전쟁의 주요 격전지였던 마리우폴을 끼고 아조우해를 빙 돌아야 한다. 이번 폭파로 남부 전선을 담당하는 러시아군의 보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데다 전쟁 수행에 꼭 필요한 교량이 망가졌으니 보복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10일 개최된 러시아 안전보장회의 석상에서 이날 우크라이나 전역을 상대로 한 폭격이 크림반도 폭파에 대한 보복임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격이 ‘개인의 자존심’ 회복만을 위해 이뤄졌다고 할 순 없다. 영국 <가디언>은 “푸틴의 대규모 타격은 러시아군 내부의 비판, 침공이 실패하고 있는 현실, 크림대교가 폭발로 흔들리면서 상처받은 자존심 등에 대한 절박한 해답이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러시아 강경파들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더 과감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도 목표로 삼아야 한다”며 “나치 정권(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이 장악한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앞으로도 러시아에 영구적이고 직접적이며 분명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은 공격이 이뤄진 뒤 “100% 만족한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해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음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러시아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 뒤 수도 키이우에서 회의를 열고 있다. 키이우/UPI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러시아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 뒤 수도 키이우에서 회의를 열고 있다. 키이우/UPI 연합뉴스

<뉴욕 타임스>의 분석도 비슷했다. 신문은 “푸틴은 잔인한 무력시위는 우크라이나와 서방뿐 아니라 자국 내 관중에게도 필요하다고 믿었다”고 전했다. 그리고리 유딘 모스크바사회경제대 정치철학 교수는 “러시아의 강경파들은 이러한 전략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다”고 했고, 러시아의 정치 분석가 세르게이 마르코프 역시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에 대한 1차 공격일 뿐”이라며 추가 공격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나아가 겨울을 앞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관련 주요 시설을 파괴해 대중의 불안을 조성하려는 의도도 읽을 수 있다. 이번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의 11개의 주요 기반시설이 피해를 입었다. 일부 지역에선 전기·수도·통신이 끊기고 대중교통이 멈췄다. 3월 말 러시아군의 후퇴 이후 일상을 회복해가던 키이우가 다시 ‘패닉’에 빠졌다. 시민 콘스탄틴 슈톤은 <뉴욕 타임스>에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며 “그래서 공습 사이렌이 울렸을 때도, 아무도 대피소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공습은 유럽 전역으로 나비효과를 일으킬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성명에서 “화력발전소와 변전소가 미사일 공격을 당해 전력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올 연말까지 유럽연합(EU)에 전력을 수출해 15억유로(약 2조800억원)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었다. 전력 수입길이 막히며 겨울을 앞둔 유럽도 난처해졌다.

조해영 신기섭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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