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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영상] 키이우, 다시 파괴된 일상…“아이들이 가장 큰 고통”

등록 2022-10-11 11:11수정 2022-10-11 18:10

[임인택 기자 우크라 현지 보도]
키이우 시민들이 10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떨어지자 다급하게 지하철 역사에 대피한 모습. 임인택 기자
키이우 시민들이 10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떨어지자 다급하게 지하철 역사에 대피한 모습. 임인택 기자

10일(이하 현지시각) 오전 8시20분께 우크라이나 대통령궁과 정부 기관이 운집한 수도 키이우 다운타운 한복판을 미사일이 가로지르며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가 입주한 빌딩을 비롯해 도심 상가 건물, 교각 등의 시설물을 파괴했다. 정부발 외신 보도로는 이날 오전 미사일 공격으로 키이우만도 40명 가까운 사상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늘한 휘파람 소리가 기자가 머문 숙소를 낮게 지난 지 30초도 되지 않아 첫 굉음이 울렸다. 연이은 두발로 도심을 강타한 미사일들이었다. 5분 뒤 구급 차량들이 숨넘어갈 듯 서둘러 달려가며, 키이우의 일과 전 평온이 전시의 그저 짧은 웃음이었음을 일깨웠다.

키이우 시민들이 10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떨어지자 다급하게 지하철 역사에 대피한 모습. 임인택 기자
키이우 시민들이 10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떨어지자 다급하게 지하철 역사에 대피한 모습. 임인택 기자

공습 전날인 9일 밤 숙소(유로마이단 근처)에서 바라본 키이우 다운타운의 고즈넉한 골목 풍경. 임인택 기자
공습 전날인 9일 밤 숙소(유로마이단 근처)에서 바라본 키이우 다운타운의 고즈넉한 골목 풍경. 임인택 기자

출근길을 다급하게 멈춘 채 시민들이 대피한 곳은 일대 가장 가까이 있는 지하철 흐레시차티크역. 지하 방공호로 사용되어온 곳이다. 입구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포대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바심(35)은 미사일 폭격 소리를 듣자마자 차를 길가에 세우고 대피소로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테러리스트이고 모든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며 분노했다.

공무원인 그는 9살 외동딸 질라타(흐레시차티크학교 4학년)를 차로 40분 거리를 달려 통학시키던 중이었다. 러시아 침공 이후 아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게 무엇인지 기자가 묻자 그는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고, 이 전쟁을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는지’ 연달아 묻자 딸을 꼭 껴안으며 “이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핵 공격 대피용으로 설계되었다는 흐레시차티크역은 3분 정도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간신히 닿을 만큼 깊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 중엔 부모와 함께 몸을 피한 30여명의 아이들도 있었다. 대피하고 한참 뒤 해맑게 인형을 갖고 뛰어놀 만큼 전쟁을 의식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질라타처럼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밥도 못 먹어서 허기 지다는 시민들도 많았고, 체념한 채 지하철 벽에 몸을 기대거나 휴대전화로 지상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 대부분이었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 입주 건물. 임인택 기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 입주 건물. 임인택 기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가 입주한 건물. 키이우 시민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고 있다. 임인택 기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가 입주한 건물. 키이우 시민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고 있다. 임인택 기자

이번 공습이 충격을 준 건, 70일만에 이뤄진 수도 키이우 공격인데다가, 특히 중심부가 폭격당한 것은 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시민은 “키이우는 안전하단 생각을 하지만, 돈바스 같은 지역에선 전투가, 그래서 살상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고 말했다. 사실 그간 키이우는 비교적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 견줘 안전하다는 인상을 줄 만큼, 일상 회복을 꾀하던 상태였다. 공습 전날인 9일 드레프르 강가 공원엔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나오거나 데이트를 즐기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식당도 모처럼 근교에서 도심을 즐기러 온 이들로 붐벼 활기를 띠었다. 맥도널드 햄버거집은 긴 줄로 유럽 어느 관광지 못지않았다.

정오가 지나면서 더는 미사일 공격 소리가 들리지 않자, 시민들은 지하철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도심이 아예 차단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출근길 복장과 상태로는 그곳에 계속 머물 순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 입주 빌딩 맞은편에 있는 안경 가게. 점원이 폭격으로 깨진 유리창 조각을 치우고 있다. 임인택 기자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 입주 빌딩 맞은편에 있는 안경 가게. 점원이 폭격으로 깨진 유리창 조각을 치우고 있다. 임인택 기자

기자도 일단 도심 복판의 숙소에서 짐을 챙겨, 지인의 차로 도심 외곽으로 이동했다. 지하철 대피 5시간이 다 되어서다. 도심 곳곳은 이미 군경이 통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삼엄한 풍경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사일이 타격한 삼성전자 현지 사무소 입주 건물은 마치 허물고 있는 공사 중 건물처럼 창 외벽이 심하게 훼손됐다. 이미 가까이 갈 수 없게 통제선이 처져 있었고, 이 빌딩 맞은편 안경 가게 점원은 깨진 유리창을 쓸어담고 있었다.

공습 전 키이우 풍경. 임인택 기자
공습 전 키이우 풍경. 임인택 기자

뜻밖에 해제된 공습경보는 외곽으로 이동하던 중인 오후 3시께 재발동되었다.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은 “금일 오전 러시아는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총 75발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현재 러시아의 공습으로 우리 국민 안전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께서는 가급적 신속히 출국하실 것을 권고드린다”고 알려왔다.

러시아의 보복성 미사일 공격으로 도시의 표정은 주말 잠깐의 웃음조차 삽시간 잃었다.

키이우/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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