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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아바나에 주점·식당 창업 열기…“미국 건너가 새 희망 찾고 싶다”

등록 2015-09-29 20:53수정 2015-09-30 23:27

족쇄 풀리는 인터넷 18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명동 격인 23번지의 관광안내소에서 젊은이들이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쿠바에서 가정 인터넷 접속은 금지돼 있으나, 6월부터 제한적으로 일부 공공장소 등에서 와이파이 이용이 허용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바나/이용인 특파원
족쇄 풀리는 인터넷 18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명동 격인 23번지의 관광안내소에서 젊은이들이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쿠바에서 가정 인터넷 접속은 금지돼 있으나, 6월부터 제한적으로 일부 공공장소 등에서 와이파이 이용이 허용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바나/이용인 특파원
54년만의 미국 국교 정상화
‘삶의 변화’ 분출 기폭제로
모두가 ‘돈’에 목말라 있었다. 가난이 싫다고 했다. 자영업을 통해 부자가 되기를 꿈꾸고, 미국으로 건너가 삶의 반전을 꾀하고 싶어했다. 삶의 변화를 갈망하는 쿠바인들의 밑바닥 정서는 예상보다 강렬했다. 54년 만에 이뤄진, 지난 7월 쿠바와 미국의 국교 정상화는 억눌렸던 욕망의 분출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바나 시내에 위치한 술집 ‘에센치알’은 발디딜 틈이 없다. 어두컴컴한 사이키 조명 아래 안개효과를 낸 세련된 실내 디자인은 서구의 여느 바와 별로 다르지 않다. 흘러나오는 미국 팝송에 맞춰 젊은이 서너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바깥에서만 보면 가정집인지 바인지 알 수가 없다. 정문까지 흘러나오는 큰 음악 소리와 작은 철문을 지키는 ‘보디가드’를 보고서야 평범한 가정집은 아님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개인이 건물 내부를 개조해 운영하는 이런 사설 바는 아바나 시내에서만 50여개가 성업중이다. 2011년 쿠바 정부가 식당과 술집, 택시와 민박, 중고차 매매와 주택 거래 등 178개 업종에 자영업을 허가한 뒤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라고 한다. 아바나의 민영 술집은 2012년 2개뿐이었다가 최근 1년 사이에만 무려 25개나 늘었다. 국영 술집의 ‘칙칙한’ 분위기에 식상했던 젊은이들은 화려한 실내 디자인과 팝송이 흘러나오는 새로운 문화에 열광했다.

바에서 만난 다리엘 로드리게스(30)는 자신도 바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왜 자영업을 하고 싶어하느냐는 질문에 “가진 자의 삶을 살고 싶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는 “세계 여행도 하고 싶고, 편안하고 부족함이 없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패션도 공부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로드리게스는 스페인풍의 아바나 옛시가지 문화재를 복원하는 국영기업에 다니다 우연히 영국 회사와 계약을 맺고 두바이에서 6개월 동안 근무를 했다고 한다. 그가 쿠바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계기라고 한다. 그는 바를 개업하면 하루 매출이 “1000세우세(138만원) 정도 된다”며 “월세가 없다면 한달 기준으로 6000~7000세우세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영기업에서 근무하는 쿠바인들의 한달 월급이 15~30세우세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젊은이들이 앞다퉈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청년들 “돈 벌고 싶어”…욕망과 이념 사이의 쿠바

로드리게스에게 미국과의 수교는 외국 관광객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는 “쿠바인들은 대체로 쿠바를 떠나고 싶어한다”며 “하지만 관광객이 많이 오게 됐으니 나는 쿠바에서 성공해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미국과의 수교로 갑작스레 관광객이 늘지는 않겠지만” 희망을 솟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18일 쿠바 아바나 시내의 민영 술집인 ‘에센치알’에서 젊은이들이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다.
18일 쿠바 아바나 시내의 민영 술집인 ‘에센치알’에서 젊은이들이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다.
아바나의 명동쯤에 해당하는 23번지 거리에서 만난 조르게 루이스(24)는 전문대학에서 전염병 예방 및 위생학을 공부하고 국영기업에 다니다가 미국에 있는 이모가 보내준 돈으로 1년 5개월 전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렸다. 장비값 1000세우세 등을 포함해 4300세우세를 투자하고 현재 한달에 100세우세 정도를 벌고 있다. 국영기업 다닐 때 월급이 24세우세 정도였는데, 이 정도 수입이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내 주변 친구들도 다 창업을 하고 싶어한다”고 귀띔했다.

개인식당, 국영식당보다 2배 많아
음식값은 국영기업 월급 한달치
빈부격차 확대 우려에
쿠바 정부 ‘개혁속도’ 조절 고민
인종간 차별문화 부활 우려도

그러나 루이스는 쿠바를 떠나 미국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한다. 그에게 미국과 쿠바의 수교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쉽게 해주는 희망이다. 루이스는 “미국과의 수교로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지 확신이 안 선다. 당장에 피부로 느끼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미국에 있는 장모가 우리를 초청했다. 미국으로 가려면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이민 절차가 간소화될지가 나한테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수교가 평범한 쿠바인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아직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 7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대사관 재개설 이후 이달 초 아바나에서 열린 후속 협상에서 대쿠바 경제제재 해제는 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쿠바와의 수교에 반대한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협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40대 중반의 쿠바인도 “미국의 제재가 풀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아바나대학 법대에 다니는 자신의 딸이 졸업하면 미국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800세우세 정도면 미국으로 보낼 수 있다”며 “일단 멕시코를 통해 미국에 도착하기만 하면 쿠바아메리칸재단에서 집과, 돈, 직업을 다 준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직원들이 미국을 적으로 생각하지, 일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그마한 정책 변화의 틈새를 뚫고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개인 식당들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개인 식당은 아바나에서만 지난 3년간 300여개가 늘었다고 한다. 국영 식당의 일률적인 메뉴를 벗어나 서구식 요리법과 실내 디자인으로 무장한 채 부를 축적한 쿠바인이나 외국 관광객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현재 아바나에서 개인 식당과 국영 식당 비율은 3 대 7 정도다.

식당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곳도 생겨났다. 땅콩기름을 짜던 공장을 개조해 만든 ‘엘 코치네로’ 식당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자신을 “아바나 법대 석사과정 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는 수입의 10%를 직원들이 나눠 갖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시장으로 향하는 쿠바의 변화가 아직은 초기 형태이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첫째는 빈부 격차 확대 우려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의 음식 가격은 팁까지 포함하면 1인당 10~20세우세 정도다. 국가기관이나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쿠바인의 한달이나 보름치 월급과 맞먹는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종적 서열이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개인 식당들은 손님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백인 계통을 주로 홀 종업원으로 고용한다. “백인은 웨이터로, 흑인은 주방장으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쿠바 혁명 이후 사라졌던 인종간 차별 문화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커지는 욕망과 평등이라는 혁명 이념 사이에서 쿠바 정부는 개혁의 속도 조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최근 들어 정부가 식당이나 바 영업 허가를 상당히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개인 식당은 50석, 바는 100석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좌석 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수입이 금지된 술을 파는 것은 아닌지, 영업시간을 제대로 지키는지 등을 수시로 점검하러 나온다”고 전했다.

국영 식당을 모두 민영화할 계획이라든가, 8배나 되는 관세를 부과하는 탓에 쏘나타 1대에 2억원가량 하는 새 차 가격을 낮추는 새로운 정책이 발표될 것이라는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 아직 시행된 것은 없다. 쿠바는 아직도 기로에 서 있다.

아바나/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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