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풀리는 인터넷 18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명동 격인 23번지의 관광안내소에서 젊은이들이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쿠바에서 가정 인터넷 접속은 금지돼 있으나, 6월부터 제한적으로 일부 공공장소 등에서 와이파이 이용이 허용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바나/이용인 특파원
54년만의 미국 국교 정상화
‘삶의 변화’ 분출 기폭제로
‘삶의 변화’ 분출 기폭제로
18일 쿠바 아바나 시내의 민영 술집인 ‘에센치알’에서 젊은이들이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다.
음식값은 국영기업 월급 한달치
빈부격차 확대 우려에
쿠바 정부 ‘개혁속도’ 조절 고민
인종간 차별문화 부활 우려도 그러나 루이스는 쿠바를 떠나 미국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한다. 그에게 미국과 쿠바의 수교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쉽게 해주는 희망이다. 루이스는 “미국과의 수교로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지 확신이 안 선다. 당장에 피부로 느끼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미국에 있는 장모가 우리를 초청했다. 미국으로 가려면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이민 절차가 간소화될지가 나한테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수교가 평범한 쿠바인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아직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 7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대사관 재개설 이후 이달 초 아바나에서 열린 후속 협상에서 대쿠바 경제제재 해제는 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쿠바와의 수교에 반대한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협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40대 중반의 쿠바인도 “미국의 제재가 풀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아바나대학 법대에 다니는 자신의 딸이 졸업하면 미국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800세우세 정도면 미국으로 보낼 수 있다”며 “일단 멕시코를 통해 미국에 도착하기만 하면 쿠바아메리칸재단에서 집과, 돈, 직업을 다 준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직원들이 미국을 적으로 생각하지, 일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그마한 정책 변화의 틈새를 뚫고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개인 식당들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개인 식당은 아바나에서만 지난 3년간 300여개가 늘었다고 한다. 국영 식당의 일률적인 메뉴를 벗어나 서구식 요리법과 실내 디자인으로 무장한 채 부를 축적한 쿠바인이나 외국 관광객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현재 아바나에서 개인 식당과 국영 식당 비율은 3 대 7 정도다. 식당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곳도 생겨났다. 땅콩기름을 짜던 공장을 개조해 만든 ‘엘 코치네로’ 식당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자신을 “아바나 법대 석사과정 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는 수입의 10%를 직원들이 나눠 갖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시장으로 향하는 쿠바의 변화가 아직은 초기 형태이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첫째는 빈부 격차 확대 우려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의 음식 가격은 팁까지 포함하면 1인당 10~20세우세 정도다. 국가기관이나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쿠바인의 한달이나 보름치 월급과 맞먹는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종적 서열이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개인 식당들은 손님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백인 계통을 주로 홀 종업원으로 고용한다. “백인은 웨이터로, 흑인은 주방장으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쿠바 혁명 이후 사라졌던 인종간 차별 문화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커지는 욕망과 평등이라는 혁명 이념 사이에서 쿠바 정부는 개혁의 속도 조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최근 들어 정부가 식당이나 바 영업 허가를 상당히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개인 식당은 50석, 바는 100석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좌석 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수입이 금지된 술을 파는 것은 아닌지, 영업시간을 제대로 지키는지 등을 수시로 점검하러 나온다”고 전했다. 국영 식당을 모두 민영화할 계획이라든가, 8배나 되는 관세를 부과하는 탓에 쏘나타 1대에 2억원가량 하는 새 차 가격을 낮추는 새로운 정책이 발표될 것이라는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 아직 시행된 것은 없다. 쿠바는 아직도 기로에 서 있다. 아바나/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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