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쿠바 아바나에서 시민들이 1시간 동안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카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
6월부터 아바나 시내를 비롯해 전국 35곳에서 제한적으로 와이파이 접속이 허용되면서 쿠바인들은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점심 무렵, 와이파이를 접속할 수 있는 아바나 시내 무역센터에선 20여명의 쿠바인들이 계단 등에 앉은 채로 휴대전화을 통해 한창 채팅에 빠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페이스북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다.
아바나대학 약대생이라는 알랭 멜로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바쁘다는 듯 연신 휴대전화만 쳐다봤다. 한시간 이용권이 2세우세(약 2750원)인 인터넷 카드를 사서 와이파이에 접속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다는 표정이었다. 멜로는 “8년 전에 헤어진 친구와 채팅을 하고 있다”며 “대략 1주일에 한번 꼴로 접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모든 친구가 와이파이를 한다”고 했다.
역시 무역센터 앞에서 만난 야이마 타마요도 “내가 4살이던 20년 전에 미국으로 간 아빠와 메신저를 주고 받고 있다”며 “그 이후에 아빠를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가 늘 내 사진을 이런 식으로 보내서 아빠가 내 얼굴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미용사로 일하고 있고 야간대학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며 “미국에 빨리 가고 싶다. 아빠가 받아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와이파이에 접속하려면 휴대전화와 사용자 정보를 정보통신부에 등록해야 한다. 아직도 규제가 심한 셈이다. 덥거나 비가 오는 날 야외에서 와이파이에 접속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인터넷카드는 1시간 이용권이 4.5세우세였는데 최근 들어 2세우세로 가격이 절반 가량 떨어졌다.
워낙 수요가 많다 보니 인터넷카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이 늘어나자, 인터넷카드를 미리 사재기해서 불법으로 파는 상인도 등장했다. 이들은 보통 1시간 이용권 가격에 0.5세우세 정도를 더 얹어 받는다. 불법 상인을 인터뷰하려 하니 손사레를 치며 황급히 도망갔다.
개인집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것은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다. 한-쿠바 교류협회 정호현 실장은 “낮엔 덥고, 남들 다보는 앞에서 누가 개인적인 채팅을 하고 싶겠냐”며 “일반인들은 가정 인터넷도 허용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쿠바 정부가 단시일 내에 가정집에 인터넷을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인터넷 빗장을 열기엔 쿠바 정부 입장에선 아직은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외국기업들한텐 인터넷 설치가 허용돼 있지만 느리거나 자주 끊기는 현상이 벌어진다. 호텔 투숙객한테도 인터넷 카드를 팔지만 5분 접속 뒤 끊어지기 일쑤다.
아바나/글·사진 이용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