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1990년대 초 무너지기 전까지만 해도 쿠바는 중국과 썩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중국이 베트남과 1979년 전쟁을 벌일 때도 쿠바는 베트남 편을 들었다. 소련과 중국이 1960년대 갈등을 겪을 때도 쿠바는 소련 쪽을 지지했다.
이제 소련이 떠나고 생긴 쿠바의 경제적 빈 공간을 중국 기업들이 상당 부분 점령했다. 미국의 대쿠바 제재가 해제될 경우 몰려들게 뻔한 미국 기업들과의 ‘한판 승부’도 불가피해 보인다.
아바나 해변가의 미라마 구역 무역센터 안에는 중국의 거의 모든 기업 사무실이 들어와 있다. 8층에 위치한 중국의 통신시스템 설비업체 중싱통신(ZTE)은 쿠바 정부와의 합작기업인 에테스카(ETESCA)를 통해 전화와 인터넷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쿠바인들의 와이파이 접속도 에테스카가 깐 인터넷망을 통해 이뤄진다.
역시 8층에 사무실을 둔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은 2006년부터 쿠바 중서부의 마탄사스 지역에서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 중국항만건설그룹은 지난해 2월 쿠바와 산티아고 항에 다목적 터미널을 건설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중국의 관영 언론인 <중국중앙텔레비전>(CCTV)도 무역센터 안에 상주하고 있을 정도다.
2013년 기준으로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쿠바의 제2교역국이다. 특히, 중국은 쿠바 니켈의 가장 큰 수입 국가다. 상대국에 기반시설을 깔아주는 대가로, 자원을 수입하는 전형적인 ‘중국식 외교’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합작회사·자원외교 등 통해
쿠바 통신·원유·가전제품까지 장악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되자
중국 기업 긴장 “24시간 근무체제”
중국 가전제품 회사인 미데아(메이디그룹)의 전자레인지가 지난 18일 쿠바 아바나 시내 국영상점에 진열돼 있다. 사진 이용인 특파원
쿠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은 중국의 영향력은 이미 가정에까지 파고들었다. 에벨로 르비스는 “냉장고나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은 중국산 제품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쿠바 정부가 2010~2011년 사이에 배급품목으로 중국 가전제품을 택해 기존의 오래된 러시아 제품과 교환해 줬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중국이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쿠바에 몇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대신 중국 제품을 구매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쿠바 정부가 중국에 일종의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쿠바 법률은 외국기업의 해당국 직원이 쿠바 현지 직원보다 많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싱통신을 비롯해, 쿠바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직원은 상당수가 중국인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다른 외국기업들이 쿠바 정부가 관리하는 인력고용회사에서만 직원을 공급받는 탓에 인사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견줘보면 상당한 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영 렌트카나 택시의 경우도 중국의 토종 자동차 브랜드인 ‘지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쿠바 정부가 전폭적으로 중국 기업을 밀어주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하지만, 쿠바와 미국이 지난해 12월 전격적으로 국교 정상화 추진을 선언하고 난 뒤 중국 기업들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센터에서 중싱통신과 같은 층을 쓰고 있는 기업의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곳에 미국 기업들이 들어올 것을 우려해 중국 본사에서 지시가 폭증하고 있다고 들었다. 거의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요일인 지난 20일 새벽 1시30분께 이 건물의 중싱통신 직원이 반바지 차림으로 화장실에 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중국 항공사 에어차이나가 지난 22일 “오는 12월1일부터 베이징-몬트리올(캐나다)-아바나(쿠바)로 이어지는 직항노선을 운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미국 항공사의 아바나 직항노선 개설 움직임을 의식한 측면이 적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서 미-중 간 ‘체스 게임’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고 있다.
아바나/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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