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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경제개혁연대 ‘질의’에서 비롯된 회오리, SK실트론 ‘사건의 재구성’

등록 2021-12-25 04:59수정 2021-12-25 10:00

총수 일가 ‘사업기회 제공’ 제재한 ‘유이’한 사례
‘부작위’ 사업기회 제공도 범위에 첫 포함 의미
실질적 시정 효과는 없어 숙제 남겨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에스케이(SK)실트론 사건’의 발화 지점은 경제개혁연대였다. 개혁 성향의 경제 전문 단체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4년 전인 2017년 10월 에스케이(주)와 에스케이하이닉스를 상대로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의 에스케이실트론 지분 인수 관련 공개 ‘질의’를 던졌다. 에스케이실트론 사건의 출발점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한 달 뒤 공정거래위원회에 최 회장의 지분 인수 관련 의혹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듬해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고 3년 남짓만인 지난 22일 공정위는 에스케이(주)와 최 회장에 대해 각각 8억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제재를 내렸다. 그룹 총수의 지분 취득에 공정거래법상 ‘사업기회 제공’ 조항을 적용한 첫 사례이며, 사업기회 제공으로 인정되는 행위의 범위를 대폭 넓힌 결정이라 재계 안팎의 눈길을 집중시켰다.

“이상한 거래 같은데…”

최 회장의 지분 인수 사실이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진 건 경제개혁연대의 ‘질의’ 6개월 전인 그해 4월이었다. 당시 보도 내용은 지분 거래 사실을 단순히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김우찬 소장은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경제개혁연대가) 처음부터 이 거래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것은 아니고, 각국의 ‘기업결합신고 승인’이 가시화된 2017년 8월 말께 이은정 회계사(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가 관련 언론 기사를 팀원들에게 공유했고, 이에 대해 제가 ‘사업기회 제공’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 검토를 거쳐 10월에 첫 논평을 냈던 것이라고 전했다. 에스케이그룹의 엘지(LG)실트론(현 에스케이실트론) 인수는 한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일본, 미국, 유럽, 중국 정부로부터 기업결합신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었다.

이은정 회계사는 “당시 공시 내용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거래 자체가 회사 기회 유용에 해당할 것으로 보아 여러 의원실을 통해 사실 확인 과정도 거치면서 문제 제기를 검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경제개혁연대에선) 주요 회사들의 공시를 매일 들여다보고 있으며 신문 기사를 검색해 회원들끼리 나눠보고 중요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에스케이(주) 이사회에 보낸 공문에서 “최태원 회장의 지분 인수는 명백한 불법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으나 사익 편취 규제 등 입법 취지를 무색게 하는 거래”라며 ‘에스케이(주)가 에스케이실트론 지분 전부를 취득하지 않고 29.4%를 최태원 회장에게 취득하도록 한 이유’를 물었다. ‘에스케이(주) 이사회에서 논의됐는지 여부 및 판단의 근거’, ‘최 회장이 에스케이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에스케이(주) 등 계열사의 도움을 받거나 제공받은 정보를 이용했는지 여부’도 문의했다.

앞서 에스케이(주)는 (주)엘지(LG)가 보유한 엘지실트론(현 에스케이실트론) 지분 51%를 현금 취득하고 자회사로 편입하는 공시를 했다. 또 에스케이실트론 잔여지분 49% 중 케이티비(KTB) 피이(PE)가 보유하고 있던 19.6%를 에스케이(주)가, 우리은행 등 보고펀드 채권단이 보유한 29.4%를 최태원 회장 개인이 인수하기로 하는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에스케이실트론은 반도체 기초재료인 실리콘 웨이퍼(규소 박판) 제조를 주된 사업으로 삼고 있는 회사다. 2012년 상장 실패 뒤 저조한 영업실적을 보이다가 2016년 매출 8264억원, 영업이익 332억원을 거둘 정도로 실적 개선을 이루고 있었다. 에스케이하이닉스 같은 그룹 내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강점도 띠고 있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런 점을 들어 “에스케이(주)가 지분을 100% 인수하지 않고 30%가량을 최 회장에게 넘긴 것은 부당한 거래”라고 봤다. 에스케이(주)에 질의문을 보낸 데 이어 공정위에 공문을 보내 “최 회장의 지분 취득은 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회사 기회 유용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며 관련 의혹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던 실마리였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이를 대체로 인정한 내용이다.

죽어있던 사업기회 제공 규제 되살려

공정위의 제재 수위를 둘러싼 논란과 별도로 이번 결정은 상당한 의미를 띤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상 사문화돼 있던 공정거래법상 ‘사업기회 제공’ 규제를 되살렸다는 점에서다. 2019년 대림(DL)그룹 사건을 빼고는 이 조항으로 제재를 받은 유일한 사례일 뿐 아니라 대림그룹 사례와 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대림그룹 건에선 관계회사(글래드호텔)의 상표권을 사실상 이해욱 회장 개인 소유인 부동산 개발회사 에이플러스디(APD)에 넘기는 ‘작위’가 이뤄진 데 견줘 에스케이그룹 사례에선 대림그룹처럼 명시적인 ‘제공’ 행위는 없이 다만, 에스케이(주)가 지분 인수를 포기한 이른바 ‘부작위’ 상태였다. 공정위의 결정은 이 또한 사업기회 제공으로 인정해 범위를 넓혔다. 에스케이(주) 이사들이 회사이익을 보호해야 할 임무를 다하지 않고 수수방관한 것도 사업기회 제공으로 봤다는 뜻이다. 공정위 제재 수위에 강한 불만을 나타낸 김우찬 소장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은 결정”이라고 평가한 대목이다.

에스케이 건은 지분 취득이 경우에 따라선 사업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 첫 사례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기업과 기업 간 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대림그룹 사례와 달리 에스케이 건에선 자연인인 총수 본인이 사업기회를 갖고 간 데서 생긴 문제라는 차이도 있다.

‘사업기회 제공’은 ‘일감 몰아주기’,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와 함께 ‘사익 편취’의 한 갈래를 이루고 있다. 총수 일가 사익 편취는 법률 용어가 아니며 공정거래법(제23조의 2)상으로는 ‘특수 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이다. 사익 편취 중 일감 몰아주기는 ‘일감’의 거래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점에서 사업기회 제공과 차이를 띤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 사례는 여럿 있었던 반면, 사업기회 제공에 대한 제재는 대림, 에스케이 두 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입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솜방망이 과징금…국민연금 소송 나설까?

에스케이실트론 사건 제재의 상징적인 의미와 달리 실질적인 시정의 효과는 크지 않다는 문제점은 숙제로 남았다. 최 회장이 실트론 주식 취득으로 볼 이득이 수천억원으로 추산되는 것에 견줘 과징금 8억원은 턱없이 작아 보인다는 대목이다. 지분 처분 명령(시정명령)이나 검찰 고발 조처도 없다. 경제개혁연대가 ‘솜방망이’ 제재라는 내용의 논평을 낸 까닭이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법원의 1심 판결에 해당한다. 따라서 추가적인 법적인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에스케이그룹은 공정위의 제재 발표 직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공정위의) 의결서를 받는 대로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방침”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에스케이(주) 지분 8.16%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대표 소송에 나설지도 관심거리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에스케이(주)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은 최태원 회장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에스케이(주)의 사업기회 제공으로 발생한 이익이 모두 회사에 귀속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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