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케이(
SK)실트론 사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 3년여 만에 나왔다. 공정위는 에스케이㈜가 실트론의 지분을 모두 인수할 계획이 있었음에도 총수인 최태원 회장에게 일부를 양보했다고 보고 제재했다. 실트론 주식으로 최 회장이 보는 이득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혐의로 에스케이㈜와 최 회장에게 각각 시정조치(향후 금지명령)와 과징금 8억원씩을 부과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에 적용한 조항은 사익편취 중 ‘사업기회 제공’ 유형으로, 회사가 직접 수행한다면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특수관계인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사건의 핵심은 최 회장이 2017년 사들인 에스케이실트론 지분 29.4%다. 앞서 에스케이㈜는 ㈜엘지(LG)가 들고 있던 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뒤 나머지 49% 인수 여부도 검토했다. 그러나 그 중 19.6%만 매입했고, 남은 29.4%는 최 회장에게 취득 기회가 돌아갔다.
에스케이㈜가 29.4%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건 최 회장이 나선 직후다. 같은 해 4월14일 최 회장은 자신이 직접 29.4% 입찰에 참여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비서실에 지시했다. 에스케이㈜도 인수 계획이 있다면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이에 장동현 에스케이㈜ 대표이사는 “에스케이㈜는 인수할 의사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런 결정은 이사회 심의 없이 이뤄졌다. 상법에 따라 이사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았어야 하지만 이를 생략한 것이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에만 보고됐을 뿐이다. 이사들이 명시적으로 최 회장의 지분 인수를 승인할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케이㈜는 최 회장의 지분 인수를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다. 29.4% 지분은 명목적으로 공개적인 경쟁입찰로 진행됐으나 실질적으로는 달랐다. 에스케이㈜는 최 회장 외 다른 인수 후보자의 실사 기회 보장 요구 등에는 대응하지 않았다. 최 회장의 총수익스와프(TRS) 수수료율을 낮춰달라고 한국투자증권에 요구하기도 했다.
실트론 주식으로 최 회장이 볼 이득은 수천억원으로 추정된다. 공정위는 상증세법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최 회장이 취득한 주식 가치가 2017년 대비 지난해 말 1967억원만큼 올랐다고 밝혔다. 에스케이㈜도 이런 점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사 당시 회사는 실트론의 기업가치가 2016년 말 1조1000억원에서 2020년 3조3000억원까지 불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제재는 기업이 자연인인 총수에게 직접적으로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다. 총수의 지분 취득에 사업기회 제공 조항을 적용한 것도 처음이다. 다만 공정위는 최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공정위 심사관의 의견이 심의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최 회장이 사업기회 제공을 지시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없고, 지배주주의 소수지분 취득에 사업기회 조항을 적용한 법원 판례나 공정위의 선례가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에스케이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했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행정소송을 포함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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