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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노트르담 드 파리’

등록 2006-02-01 18:00수정 2006-02-02 17:49

소설 속에서 뚜벅뚜벅 살아나온 군상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드>엔 이런 말이 나온다. “아름다운 것은 더러운 것, 더러운 것은 아름다운 것”. 이에 화답하듯 빅토르 위고는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추함의 상징인 꼽추 카지모도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했다.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중심으로 카지모도와 성직자 프롤로, 방탕한 장교 페뷔스의 사랑과 욕정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 소설에서 정신과 육체의 괴리 속에 고통받는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원초적 모순의 원형들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우선 밝혀두어야 할 것은 이것이 프랑스 작품이지만 프랑스인들의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몬트리올의 ‘태양 서커스’단이 창조성만 보장된다면 누구라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것처럼, 이 작품에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위고 탄생 200주년 기념의 해였던 2002년 무렵, 프랑스에서는 그의 많은 작품들이 재조명되었다. 1998년 제작된 이 뮤지컬 역시 위고에 대한 오마주라 할 만하다. 그가 지녔던 휴머니즘과 관용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서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한 까닭이다. 유럽의회를 예견했던 위고를 프랑스에서는 흔히 미래의 작가라고 부르는데, 이 뮤지컬을 보면 19세기 초 위고가 이 역사소설에서 그렸던 르네상스기 사회의 인간상이 21세기 현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지 않은가. 우린 지금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뮤지컬은 인기를 얻으면 그뿐 대체로 깊이 있는 사상을 추구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제 뮤지컬에서 인간의 보편적 모순에 대한 웅숭깊은 인식을 논하게 되었단 말인가. 이는 예술과 자본의 결합이 이미 장르 구분을 해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적 장르에서 예술성을 선언하고 고급 예술이 대중성을 지향하는 일 말이다. 현대 예술의 모든 부분은 대규모 문화상품 안에 용해된다.

이 작품은 원작의 사건 세부를 따라가지 않고 주요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을 노래에 담아 연결함으로써 극을 전개한다. 그래서 공연은 뮤지컬이라기보다는 대중음악을 사용한 현대 오페라 혹은 콘서트에 표현주의적 현대무용과 곡예가 합쳐진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감정을 고조시켜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는 가운데 대성당과 성직자의 세계가 불법체류자, 보헤미안의 세계와 대립하며, 양보 없는 투쟁은 공멸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소설의 고전적 품격을 잃지 않는 이 뮤지컬이 현대적 공감대를 얻는 것은 텍스트로부터 해방된 인물들 덕이다. 낭만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원작에서 현실의 비루함을 지니고 작가에 의해 해부되던 인물들이 공연에서는 깨어있는 인물이 되어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공연은 낭만주의적 혁명성을 지니고 노래 가사는 인간의 비밀스런 갈망과 사회적 모순을 토로하는 열쇠말이 된다. 악마처럼 소름끼치는 부주교 프롤로나 바비인형을 연상시키는 플뢰르 드 리스(페뷔스의 약혼자)처럼 캐스팅 자체에 얹혀있는 이미지도 공연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다. 세종문화회관 큰 무대에서 배우들의 가창력은 녹음된 반주를 따르지 못하고 1층 관객에게 무대 바닥에 강조된 조명은 무의미하며 3층쯤 되면 이미 라이브 공연을 즐길 분위기는 못된다. 세속성을 강조하여 둔탁하게 만든 무대는 벽이라는 상징성은 갖지만 다른 부분의 세련됨을 따르지 못했다.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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