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의 박자와 몸놀림을 녹이자
국립발레단의 신년맞이 갈라공연(1월4~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레퍼토리 선택의 폭과 화려함이 있는 무대였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중인 발레무용수와 국립발레단의 주역 및 신진기예들이 함께 유명 레퍼토리의 절정부들을 연기했다. 서구식 레시피로 만든 골동품 양과자를 음미하는 듯한 발레 식도락의 시간이랄까. 진기한 테크닉, 다양한 파드되(2인무)가 즐비한 이 무대는 또 한편으로 국립발레단의 역량을 한눈에 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주목을 끈 것은 강수진(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마뉘엘 르그리(파리오페라발레단)의 2인무였다. 연이틀 호흡을 맞춘 <카멜리아의 여인>과 <오네긴>은 ‘너는 내 운명’식 신파와 엇갈린 정념의 비극이 어떻게 발레 언어화되는지 보여줬다. 기교의 전시장이기 마련인 다른 작품과 달리 이들 작품은 몸으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 드라마를 살려내는 힘이 남다르다. 그래서 매니아 관객들은 강수진이 또다른 최정상급 파트너 르그리와 어떤 앙상블을 만들지가 궁금했을 것이다. 이전만큼 폭발적인 몸감을 조율해내진 못했지만, 상반되는 갈등이 들끓는 강수진 특유의 불균형의 균형에 실린 집중력과 연기력은 여전했고, 르그리 역시 섬세한 연기의 대가다웠다. 러시아 발레의 양대산맥에 속한 배주윤(볼쇼이발레단)과 유지연(키로프발레단)도 갈고닦은 기량과 개성적 표현력으로 세계 무대에 서는 이유를 증명했다. 둘째날 선보인 작품들이 더 도전적이고 의욕이 배어나왔다. 베르톨루치의 영화에서 따온 <마지막 탱고>는 배주윤이 관능과 조형미를 조화시켜 눈길을 끌었고, 국내에선 접하기 힘든 고전 <세헤라자데>는 유지연의 파트너 이고르 콜브가 이교도적인 야성의 이미지를 드러내어 ‘니진스키의 존재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야릇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갈라는 해외파 무용수들에 대한 의존이 높다는 점이 관찰된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국립발레단의 현주소를 보면, 이원국의 은퇴, 김용걸과 김지영의 해외진출로 인한 공백이 충분히 메워지지는 않은 셈이다. 물론 김주원이나 이원철이 버티고 있지만, 차세대 주자로 삼으려는 김현웅, 이시연 등의 신진들은 아직 잠재력을 인정받는 정도이다. 우려되는 것은 이들의 잠재력이 채 꽃피지 못하고 자칫 시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국립발레단의 단원들은 공연 횟수가 적은 탓인지 적절한 자극과 도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인상이다. 이번 갈라 공연만 보더라도 재작년에 은퇴한 이원국이 <스파르타쿠스>에서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보여줬다. 무대에 자주 설 기회를 가져서 자기관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여 발레 후속 세대들이 분발했으면 한다. 물론 신진기예의 자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립발레단 자체의 변화로써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립발레단은 예술감독이 바뀐 후 1년 동안 무난하게 연착륙했다는 평가이다. 이제는 원석들을 갈고닦을 만한 시스템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클래식의 기교를 덧입히는 재현 체계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레퍼토리 발굴과 재해석 그리고 창작이 없다면, 그저 전임자가 발굴한 레퍼토리들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의 고유한 박자와 몸놀림이 발레 언어로 녹아들고, 문화적 자부심이 듬뿍 담긴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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