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넌버벌 퍼포먼스 ‘탭덕스’

등록 2005-12-28 16:35수정 2005-12-29 15:31

대지 두드리는 노동자의 발, 탭댄스!
두드려라, 그럼 천국이 열릴 것이다. 이것이 타악의 신념이다. 몸과 도구, 혹은 몸과 세계가 직접 부딪칠 때의 몸짓과 소리를 통해 세계의 소박한 체험을 상기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원체험의 본질을 우리는 일찍이 ‘신명’이라 불렀지만, 명명은 달라도 북을 가지고 노는 부족이라면 뜻이 같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달라도 타악의 두근거리는 파동으로 세계를 만나는 현장에는 몸의 강한 터치가 있기 마련이다.

세계를 순회하는 호주의 넌버벌 퍼포먼스 <탭 덕스>(12월22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는 풋풋한 소년에서 건장한 섹시가이, 그리고 관조적인 중년까지 모두 발의 타악을 보여주는 마초 천국이었다. 다양한 남성 캐릭터들이 각자의 개성을 물씬 풍기는 현란한 재기를 보여주었고, 바뀌는 장면마다 고난도의 묘기와 순발력을 과시했다. 그동안 국내에는 아일랜드산 에스닉 계열과 북미산 브로드웨이 계열이 찾아왔지만, 이 공연은 독특하게도 오스트레일리아산이었다. 그런데 이 오스트레일리아산 탭댄스는 놀랍도록 혁신적이면서도 발랄했고, 세련되면서도 탭댄스의 근본을 잊지 않으려 해서 인상적이었다.

사실 발재간은 손재간보다 부자연스럽다. 한정된 리듬에 갇힐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안무가 데인 페리는 여기에 노동계급의 육체적 지각이 가진 뜨겁고 명랑한 정서를 투여했다. <디어헌터>식 철강공장에서 청바지의 노동자가 금속 불꽃과 굉음을 무대 가득 쏟아낸다. 이 압도적인 오브제가 탭댄스의 요람이 어디인지를 가르쳐준다. 즉 일하는 자의 일상 근처에서 나온 자발적 여흥이자 놀이라는 것이다. 혁신은 그런 정서를 바탕으로 스타일의 변화로 나아간다. 탭댄스의 단조로운 음색을 디지털 악기로 다채롭게 번역하여 즐거움을 상승시킨다. 부족한 음량은 여분의 드럼 연주와 피아노곡으로 증폭시킨다.

정서와 소리의 강화가 탭댄스의 가능성을 좀더 열어젖혔다면, 스케일과 가변성을 살린 무대미술, 스펙터클의 고안, 단편화와 정교화의 연출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것이 <탭 덕스>의 특장이다. 바닥에서, 경사 무대에서, 6층 계단에서 숨쉴 틈 없이 남자들은 역동적이고 섹시한 매력을 뽐낸다. 독자적인 테크닉의 자기과시에 몰두하는가 하면, 오줌 누는 듯한 화장실 개그, 농구공 묘기, 소년과 장년의 춤의 대화, <사랑은 비를 타고>식의 물장구쇼 등등 재치만점의 독무와 군무가 번갈아 오간다. 이러한 남성미와 탭댄스의 결합은 삶의 순정을 속절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강한 우정과 세대간의 소통, 청년 문화까지 다종다기하게 표방한다. 모든 단편들을 주섬주섬 맞춰보면, 건강하고 발랄한 삶의 모자이크를 이룰 것이다. 다소 쩔어버린 하류의 정서는 있지만, 비극의 파괴적 이미지는 없다.

세계적 명성을 누리면서 스펙터클 과잉과 뮤지컬 관습이 자의식의 군살로 붙은 모습도 눈에 띄지만, <탭 덕스>는 탭댄스 자체를 관조하는 듯한 장면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탐문한다. 삶에서 나온 이 자연스런 춤과 소리의 결이 어디에 터잡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리하여 최초의 발구름으로 돌아가려는 소박성, 그 질긴 기억의 현시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두드리는 것은 여전히 대지이며, 두드리는 행위는 철없는 발구름이다. 아이같은 타악의 정신이 오롯해서 더욱 매력적이고 신난다.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1.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2.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3.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2025년 ‘젊은작가상’ 대상에 백온유…수상자 7명 전원 여성 4.

2025년 ‘젊은작가상’ 대상에 백온유…수상자 7명 전원 여성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저 평등의 땅에’ 작곡 류형수씨 별세 5.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저 평등의 땅에’ 작곡 류형수씨 별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