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차게 달려라 베토벤 프로젝트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올 한 해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지난 13일 그 첫 무대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찾았다. 정명훈은 이미 프랑스 국립 라디오 필하모닉과 베토벤을 연주했고, 도쿄 필과도 전곡 프로젝트를 완수해 격찬을 받은 터라, 3개국 악단과 ‘교향악의 최고봉’에 등정하는 대장정의 서울 무대가 무척 기대되었다. 더구나 한 주 전 신년 음악회에서 연주한 <교향곡 5번 ‘운명’>의 진한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에 설렘은 더욱 컸다. 이 날 연주된 곡은 <교향곡 1, 2, 3번>이었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운명>에서 들었던 차갑게 날선 음향은 아직 여물지 않았다. 긴장한 모습이 여실했다. 현과 관의 조화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이것이 바로 베토벤의 난점이다. 모차르트가 화려한 선율을 끝없이 뽑아가며 곡을 전개하는 데 비해, 베토벤과 하이든은 작은 모티브를 만들고 그것을 발전시켜 가며 줄거리를 만든 작곡가이다. 때문에 파트 사이의 긴밀한 교감이 생명이다. 다행히 점점 앙상블은 제자리를 찾아갔고, 4악장은 치밀한 직물을 엮으며 끝맺었다. <교향곡 2번>은 확실히 달랐다. 대담한 악기법과 주제의 확대 변형이 변화무쌍한 이 곡에서 서울시향의 진가가 드러났다. 1악장 코다의 점증하는 드라마는 기분좋게 발산되었고, 3악장 스케르초는 생기발랄한 익살이 감칠맛 있었다. 능청이 계속되는 4악장이 끝날 때 단원과 지휘자 모두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2부 프로그램인 <교향곡 3번>에서는 이 만족이 계속되지 못했다. <교향곡 3번 ‘영웅’>이 불과 2~3년 전에 작곡된 <교향곡 1, 2번>에 비해 혁신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전에 없는 소설적 규모와 군악처럼 격렬한 음향 때문이다. 베토벤은 이 곡에 앞서 발레 <프로메테우스의 창조>의 피날레에서 4악장에 등장할 선율을 시험했고,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 작품번호35>에서 서사적인 전개의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이 치밀한 준비가 <영웅>을 ‘교향악의 역사를 바꿔 놓은 곡’이라 불리게 만든 동인이다. 그러나 앞선 <교향곡 2번>에서 보였던 응집력이나 지난 <교향곡 5번>에서 전율케 했던 짜릿한 음향은 여기 없었다. 영웅의 발흥과 장례, 부활과 승리를 다 담아내기에는 충동이 부족했다. 충분한 추진력을 갖지 못한 원인은 광활한 공연장 탓도 있었다. 지휘자와 단원은 황무지에서 서로를 놓치지 않고 균형 감각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만 탐미적일 만큼 아름다운 빛을 뿜는 현과 박력 있는 금관을 간간이 들을 수 있는 데서 위안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첫 삽을 떴을 뿐인 ‘정명훈과 그의 악단’에게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 당장 이번 주 <교향곡 4, 5번>의 연주는 훨씬 안정된 예술의전당에서 듣게 되는 만큼 더욱 찰진 호흡이 나오리라 기대해 본다. 정준호/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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