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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의인물로세상읽기] 대사 꼬였다…“어이 잘혀, 그게 뭐여” 까르르

등록 2006-08-10 16:05수정 2006-08-11 14:15

충남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에서 전승되던 박첨지 놀이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26호다. 김동익씨는 박첨지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놀이 전반의 책임자 노릇도 한다.
충남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에서 전승되던 박첨지 놀이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26호다. 김동익씨는 박첨지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놀이 전반의 책임자 노릇도 한다.
달래농사 짓느라 밭일 바빠 저녁밥 먹고 느지막히 놀이 준비
그날따라 한사람 빠져 죽을 맛이라도 말 꼬이는 게 구경꾼들엔 되레 볼거리
어떤가, 본디 놀이가 그런 것 아닌가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서산 박첨지놀이 연희꾼 김동익씨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길 다니면서 자못 흥미로운 일은 마을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여염집의 살림규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부엌을 넌지시 들여다보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일 중의 하나다. 부엌을 보려면 반드시 안주인의 허락을 맡아야 하니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마침 그날이 마을의 축제와도 같은 놀이가 벌어지는 날이라는 정보를 얻어 들으면 뛸 듯이 기뻤다. 횡재라도 한 양 마음은 들뜨고 어서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곤 했던 것이다. 비단 놀이뿐 아니라 그 마을에 전통적인 방식의 삶을 이어오거나 수공예품을 만드는 이가 있어도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웠다.

양반풍자 꼭두각시놀이와 흡사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여태껏 그렇게 다니면서 눈에 띄는 마을놀이가 있으면 거개 어울려 같이 즐기곤 했다. 때로는 낯설기도 했지만 그 어색함은 나의 흥미로움과 그들이 내뿜는 신명에 가려졌고 판에 어울렸는가 싶으면 금세 그들과 동화되어 있기 일쑤였다. 서산의 음암면 탑곡리에서도 그랬다. 그 곳에 갈 때는 아예 날을 받아서 갔다. 아마 8~9년 전의 이른 봄이었지 싶다. 이장님을 통해 언제 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한달음에 달려 간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에 도착했지만 마을은 조용하기만 했다. 달래를 주농으로 하는 마을인지라 모두 밭에 나가서 일을 할 뿐 그 누구도 놀이 준비를 하지 않아 썰렁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장님을 수소문해서 왜 이리 마을이 조용하냐고 물었더니 걱정 말라며 허허 웃기만 하다가 저녁이면 마을회관에서 한바탕 놀 것이니 그때 다시 오라는 말만 남기고는 밭으로 종종걸음을 놓는 것이 아닌가. 미심쩍었지만 어쩔 것인가. 저녁에 판이 벌어지더라도 이미 오전부터 들썩이는 여느 마을과는 너무도 달라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릴없이 마을 근처를 배회하다가 해거름이 되어서 다시 마을회관을 기웃거렸다. 다행히 놀이 준비를 하는듯한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이는 김동익씨였으며 놀이의 책임을 맡고 있는 분이었다.


그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왜 이리 마을 사람들이 모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래서 언제 놀겠냐고 했더니 “인자 곧 나올껴. 암만 노는 게 좋지만서도 저녁은 먹어야 할 꺼 아녀.”라며 무사태평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연희자들이 모일 동안 그이에게 놀이에 대해 들었더니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이와 너무도 흡사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놀이의 제목 그대로 첫째 마당인 박첨지 마당은 박첨지가 주인공이며 자신이 그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놈이 마누라가 둘이라고 했다. 그도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해 어느 해에는 길 떠났다가 둘째 마누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첨지가 첫째 마누라에게는 시큰둥하고 둘째 마누라만 살갑게 대하자 그 둘 사이의 골이 깊어져 이윽고 분가를 하게 되는데 살림마저도 작은 마누라에게 후하게 줘서 마을 사람들이 첨지를 조롱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둘째 마당은 평안감사 마당이며, 감사라는 사람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애를 쓰기는커녕 저 홀로 매를 풀어 꿩 사냥에만 열중하는 못된 관리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결국 매가 잡아 온 꿩고기를 잘못 먹고 죽음에 이르게 되고 상여를 타고 나가는 그의 주검 앞에서 고개 숙인 아들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셋째 마당은 절 짓는 마당이다. 마을 사람들이 시주를 걷어 공중사라는 절을 짓고는 장님과 같은 천대받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놀이가 끝나게 되니, 주 내용은 권선징악이며 부처의 가피에 힘입어 평온한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다.

아낙네들 수다, 비온 뒤 죽순처럼

놀이의 마지막에 지은 공중사라는 절. 안에 계신 이는 부처님이다.
놀이의 마지막에 지은 공중사라는 절. 안에 계신 이는 부처님이다.
놀이는 탈을 가지고 하지만 그것을 얼굴에 뒤집어쓰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인형극처럼 무대 뒤에 연희자들이 들어가서 손으로 그 탈을 놀리는 인형극과 같은 것이다. 탈은 박으로 만들며 김동익 자신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 깔리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백열등 서너 개로 불을 밝힌 마을회관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회관에 들어서는 사람들 모두 놀이에 필요한 것들을 나르고 또 한 패는 회관 한 쪽에 무대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사실 무대라야 가슴께 까지 오는 높이의 검은 천으로 구경꾼들이 앉는 곳과 구별하는 정도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안과 밖에 앉은 사람들로 연희자와 구경꾼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 판단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은 검은 천을 무시로 넘나들며 놀이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중 등장인물로 판단해보면 연희자들이 열 명은 되어야 함에도 그들이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무대 위로 손만 올라오면 되는 것이기에 특별한 복장을 갖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회관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운 것은 시작을 알리는 꽹과리 소리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내 구석에 기댄 아낙네들로부터 조곤조곤 속삭이듯 수다가 시작되었다. 도가 넘는다 싶으면 남정네들이 핀잔을 주고 또 수그러들었다가는 비 온 후 죽순처럼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대 뒤에서는 열중이었지만 잘 풀려 나가던 사설이 갑자기 멈추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전문 연희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을 주민들이었으며, 하필 저녁 느지막이 모여서 노는 것 또한 낮에는 모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설을 달달 외울 수도, 장구를 맵시 있게 칠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저 투박하기만 하지만 본디 놀이란 그런 것 아닌가. 세련된 몸짓과 혼 빠지게 두들겨대는 장구나 꽹과리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놀이가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문화재 된 뒤엔 놀이 없고 공연만

그날은 배역을 맡은 사람 중 한 명이 오지 못해서 김동익씨가 일인이역을 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그가 아무리 그 놀이를 이끄는 책임자라고 하지만 그 또한 달래 농사를 만만치 않게 짓다 보니 혼자 감당해 내기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도 제 차례의 사설을 기억할까 말까한 나이들인데 두 개의 채널을 가지고 그것을 수시로 돌리면서 매끄럽게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구경꾼들에게는 볼거리였다. 김동익씨가 꼬이면 그 다음에 사설을 받아야 할 큰 마누라도, 또 이어나가야 할 작은 마누라도 헛갈리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구경꾼들은 또 틀렸다고 타박을 하면서도 누구하나 싫은 기색이거나 그들이 못한다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까르르 웃음을 지으며 “어이, 잘혀, 그게 뭐여”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즐거워했다.

도시에서의 공연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또 무형문화재라고 지정된 이수자들이나 전수자들이 볼 때는 한낱 마을놀이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날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마을과 놀이가 그 안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고 또 그것이 감춤없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놀이에 대해 그 어떤 권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전문성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서 즐기는데 아무런 모자람도 없어 보였다. 더구나 그 놀이를 누구에게 보여줄 일 없이 자신들끼리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부담이 있을 까닭이 없을 뿐더러 경직되는 일은 더더군다나 없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질박한 촌부들이 판을 벌려 놓고 즐기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그러나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난 다음이었다. 그들의 놀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바깥세상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증이 동해 해미 읍성으로 달려갔지만 나는 마을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대라는 것이 나와 그들 사이에 거리와 높낮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슴 아팠던 것은 놀이는 사라지고 공연만 남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소비하는 문화가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문화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통 연희문화라는 것이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남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가장 으뜸 되는 것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지정받기 위해서는 자신들끼리 즐기는 것 뿐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잘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놀이의 본질이 변질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가 되고 만다. 하지만 나는 잊지 못한다. 초라한 마을회관에서 벌어지던 그날의 놀이를 말이다. 그것은 공연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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