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이지누의인물로세상읽기] 못박인 검지손가락 아름다운 ‘훈장’

등록 2006-07-13 18:28수정 2006-07-14 21:28

제주도의 이수여 할머니는 이제는 보기 드문 망건을 70년이 넘도록 만들었다.
제주도의 이수여 할머니는 이제는 보기 드문 망건을 70년이 넘도록 만들었다.
12살부터 배운 말총꼬기·망건짜기 “나난 바당 일 몰라 이 일만 해가미 살아왔제”
골무 속 굳은살 쑥스러워하지만 침침한 눈·뻐근한 허리…당연한 노동의 퇴적물
일-휴식 사이 완충 필요하듯 삶도 그러했으면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제주에서 망건 짜는 이수여 할머니

지난봄, 집에 관한 책을 한 권 썼다. 당연히 부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책을 읽은 몇몇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내용인즉 한옥의 부엌 동선에 대한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낮 동안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 와 다시 부엌일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 힘든 노동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것을 두고 낮 동안의 노동을 풀어 줄 수 있는 스트레칭이 가능한 동선이라고 했으나 몇몇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는 식으로 나무랐다. 부엌일 자체만 놓고 보면 분명 고된 노동이다. 그러나 낮 동안의 노동으로 인해 고단해진 몸을 이끌고 연이어 감당해야 하는 부엌일마저 없었다면 우리들의 할머니나 어머니의 몸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며 더욱 많이 상했을 것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옥 오르락내리락 스트레칭 효과

요즈음과 같은 무더위를 견디는 방법 중 이열치열이라는 것이 있듯이 노동 또한 강한 노동으로 굳어진 몸은 완화된 노동으로 풀어야 하는 법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휴식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몸은 강한 노동으로부터 갑자기 주어지는 편안한 휴식을 감당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은 구조다. 그렇기에 강한 노동을 시작하기 전이나 마친 후에는 그 보다 덜한 움직임으로 몸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종일토록 비바람이 불거나 따가운 햇볕이 내려 쪼이는 들에서 하는 일이 강한 노동임에 틀림없다. 또한 부엌일은 상대적으로 그 보다는 완화된 노동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가 아니라 농경사회에서 가족 구성원에게 분배된 노동을 마다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던가.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쓰는 아버지나 부엌에서 쭈그리고 앉아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나 모두 같이 하루 동안 있을 노동에 대한 준비운동의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절감하며 앞 다투어 하려는 스트레칭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 또한 자신의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하여, 혹은 하루 종일 움직인 몸의 근육을 이완시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자 함이 아닌가. 자신의 몸을 가꾸기 위해서 하는 운동의 앞과 뒤에는 자신의 몸을 풀어 주려고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도 들에 나가 일을 하기 전이나 돌아 온 후에 또 다시 노동을 해야 하긴 하지만 그것이 몸을 풀어주는 노동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참 의아하며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그로 미루어 지금의 할머니들이나 어머니의 몸이 병난 것이 노동에 이어지는 부엌일의 가혹함 때문이 아니라 부엌일을 했으니까 이만이라도 하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마저도 없었다면 강한 노동과 편한 휴식사이의 완충장치가 없었기에 더 심하게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더불어서 말이다. 세상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반드시 완충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사람, 기계를 가리지 않는다. 한옥은 그 완충장치가 뛰어난 공간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언제나 한옥의 장단점을 이야기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불편한 점이 바로 그 공간구조이며 동선이다. 변소에 가는 것도 불편하고 부엌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마당에서 마루로 올라서는 것도 귀찮아하며 마땅치 않은 것으로 꼽는다. 그래서 개량된 주택들에서는 높낮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것이 평면인 것이다.

그처럼 높낮이가 없는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힘들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몸이란 구부리고 펴고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게끔 만들어져 있는 것인데 그 기능들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면의 공간만을 오가는 사람들의 무릎이나 허리와 부엌에서 마당으로 또 마당에서 마루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허리나 무릎 중 어느 쪽이 더 튼튼하겠는가. 많이 움직여서 쉬 고장이 나고 상할 수 있다고 트집을 잡으면 할 수 없지만 물어보나 마나일 것이다.

‘허생전’에서 매점했던 그 말총

그니는 이제 눈도 침침하여 보이지도 않고 허리마저 아파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한다. 하지만 난 그니가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니는 이제 눈도 침침하여 보이지도 않고 허리마저 아파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한다. 하지만 난 그니가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사진은 바느질하는 할머니 사진을 펼쳐놓고 엉뚱한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을 움직여서 얻는 귀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니 별 다를 것 없지 싶다. 사진속의 할머니는 제주시 화북동에 살던 이수여 할머니다. 이제는 한정된 사람 몇몇만 찾는 탕건이나 망건을 곧잘 만들던 이였다. 제주도에는 예로부터 말이 많았으니 탕건이나 망건을 만들 수 있는 말총이 흔했다. 오죽하면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에서 장사를 시작하는 허생이 처음으로 달려 간 곳은 경기도 안성이었고 그곳에서 각종 과일을 사들인 그가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이 제주도였겠는가. 말총을 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도의 말총을 모두 사들여 풀지 않으면 나라 안의 백성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그것은 나라 안의 망건이나 탕건이 대개 제주도의 말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재료가 풍부하니 일제 강점기를 지날 때 까지만 해도 북제주의 함덕이나 조천의 여인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말총을 꼬았다고 한다. 하물며 여자아이들까지도 몸 성하고 손만 놀릴줄 알면 글을 배우기보다 물질이나 말총 꼬는 일에 몸을 보탰다고 하니 그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니는 1923년생이며 12살에 친정어머니로부터 망건 짜는 법을 배웠다며 운을 뗐다.

“그 엿날엔 뭐 먹고 살아날 게 있수꽈. 바당에 것만 행 먹곤 살아났제. 나난 바당에 일 할 줄 모르니 어릴 적부텀 이 망건 꼬는 일만 영 해가미 살아왔제.”

옛날에 먹고 살 것이 흔하지 않으니 바다에 물질을 하며 살았는데 자신은 물질을 할 줄 모르니 망건 꼬는 일만 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보탠다. “요샌 몸이 아파난, 눈도 아니 보이고…” 라며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자신을 한탄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그니가 만들어 놓은 망건이나 탕건도 그렇거니와 골무를 끼고 바늘을 잡고 한 손으로 말총을 고르는 그니의 손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여겼다. 또한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내리 깔고 바늘 땀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니의 모습은 전체로서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겉은 딱딱하지만 부드러움이…

사람의 몸이란 당연히 그 사용에 따라 본디의 모습과는 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쉼 없이 망치질을 하는 석수장이의 손에 굳은살이 박이거나,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해 온 농투성이의 손은 도시에서 펜대만을 놀린 사람들의 손 보다 훨씬 커지기도 하며 팔의 길이가 달라지기도 한다. 풀무질을 하며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두드리는 대장장이에게는 불에 덴 자국이 무수할 것은 두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니 또한 그에 다름 아니다. 70년이 넘도록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 눈이 나빠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하니 허리가 아픈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골무를 끼긴 하지만 오른손 검지의 남다른 굳은살이 박이는 것을 어찌 그니라고 몰랐겠는가.

그것을 만지려들면 그니는 쑥스러워 하지만 나는 구태여 만져보았다. 손끝에 닿는 느낌은 딱딱했지만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부드러움이 내 마음속으로 전해져왔다. 간혹 어쩌다 보고나면 허망하기만 한 텔레비전의 아침프로그램을 볼 때가 있다. 영화를 찍거나 음반을 내고는 한참 만에 나타난 연예인을 두고 나이가 들었음에도 몸매관리를 잘했다거나 예뻐졌다며 추켜세우는 사회자나 마치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양 떠들고 있는 어떤 연예인들보다도 굵기만 한 그니의 몸매가 아름답게 여겨지고, 거칠기만 한 그니의 손이 부드러우며, 침침하여 잘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따스하기 그지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것은 취향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노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노동으로 굵어지거나 상한 몸이 헬스나 다이어트로 관리된 44사이즈가 꼭 들어맞는 잘 빠진 몸 보다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힘겨운 노동을 치른 몸이 아프지 말아야 하는 것은 희망사항이며 아픈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물론 몸을 많이 사용해서 아픈 어른들을 보면 가슴이 짠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삶에 대해 더 정당하고 떳떳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몸이거나 마음이거나 간에 우리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것은 완충장치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때 잠시 머물러야 할 그곳 말이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사회구조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곳, 완충지대다. 그것이 없기에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은 늘 아픈 것이 아닐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1.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2.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3.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4.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5.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