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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지누의인물로세상읽기] 효 깨우쳐준 당신, 그립습니다

등록 2006-05-11 17:09수정 2006-05-12 17:14

1998년, 탈상을 앞둔 박상근씨. 그이는 어머니 묘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1998년, 탈상을 앞둔 박상근씨. 그이는 어머니 묘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스무살 때 아버님 3년상에 예순 넘어 어머니 시묘살이
왠 고집이냐 물으니 “당연한 일” 빙긋 웃어
3천번 곡도 모자라 탈상날 눈물 흘린던 그 모습
그 마음 뒤밟으니 내 맘속 효심 보여
더 낡기 전에 당신의 가족사랑 한번 꺼내 보시라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충북 제천 봉양면에서 시묘살이 하던 박상근씨

스무 살 시절이었지 싶다. <거대한 뿌리>에서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 에미 씹이다. 統一(통일)도 中立(중립)도 개 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아이스크림은 미국 놈 좆 대강이나 빨아라…” 라며 거침없이 외치던 김수영을 무던히도 좋아했다. 그의 시집이 판금이 되고 뒤 이어 신동엽의 시집마저 판금이 되었을 때 밤을 새워 낡은 타자기로 토닥토닥 그들의 시를 두드려 친구들과 몰래 나눠 읽곤 했었다.

그 즈음 나는 그의 또 다른 시를 찾아 읽고는 열광했다. <나의 가족>이라는 그 시는 그 무렵의 나에게는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시 나의 꿈은 부모님들이 기대하는 삶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자연히 집안과의 관계는 소원하여 독립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집 옥상에 허술하게 블록을 쌓아 만든 가건물에서 김수영이나 보리스 파르테르나크의 시집을 끌어안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것은 순전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또 책상 앞의 벽에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을 써 붙여 놓았던 것은 나를 정당화시키려는 것이었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휘갈겨 써 붙였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전략)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김수영, <나의 가족>)

30년만의 고백 “사랑합니다”

그렇게 독립을 꿈꾸고 혹은 암묵적인 강요를 당하며 집을 나온 후 지금까지 부모님들과는 같이 살아 보지 못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집을 나온 이후 단 하루도 당신들과 잠을 같이 자 보지 못했다. 모진 삶을 산 것이다. 그러니 당신들에게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 볼 겨를도 없었다. 아무리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이라지만 그것은 너무했다 싶기도 하다. 얼마 전 나의 어린 시절의 집에 대한 책을 쓰면서 이만큼이라도 살게 해 준 당신들의 사랑에 감사한다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글로 남겼으니 집을 나온 후 무려 삼십여년 만이다.

조금 홀가분해지긴 했지만 그것을 어찌 지난날 나의 어리석음의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겠는가. 그 글을 쓰고 난 다음 문득 떠 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9년 전, 충북 제천의 봉양면에서 만났던 박상근씨다. 60을 갓 넘긴 그이는 어머니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다. 혹자는 정신나간 사람이라고도 하고 또 보기 드문 효자라고도 칭송하던 그이를 만난 것은 3년 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머니 묘에서 20m나 떨어졌을까. 합판과 거적으로 얼기설기 지은 움막의 문을 열자 참을 수 없는 냄새가 풍겨 나왔다. 음식 냄새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르는 향내 그리고 그이의 몸과 옷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약한 냄새는 나를 물리치지 못했다. 그날부터 탈상하는 그날까지 열댓 차례 그를 만나러 다녔으니 말이다.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울산에 살면서 엔지니어로 은퇴를 했지만 본디 제천 사람이었다. 더구나 스무 살 남짓 할 무렵 돌아가신 아버님도 3년 상으로 보내드렸다고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예 움막을 짓고 살지는 못했고 집 가까이 모셨기에 매일 아침마다 꼬박 걸어서 다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다가 물었다. 왜 요즈음 같은 시대에 그토록 3년상을 고집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자 순하기만 하던 그이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나를 의아한 듯 바라보기만 했다.

9년 전 냄새나는 움막생활

머쓱해진 내가 재차 묻자 그제야 부모님들 일에 무슨 이유가 있고 사족이 있느냐는 투로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내가 부모님들에게 고약했듯이 혹시 어머니 살아생전에 못다 해 드린 것이라도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렇지도 않단다. 어머님 돌아가실 때 까지 장남인 그이가 함께 살았고 형편 닿는 대로 정성을 다해 모셨다고 하니 그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것인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아버님 때는 직장에 다녔으니 출근하기 전에 다녀 온 것이고 지금은 퇴직하여 시간이 있으니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 것일 뿐 두 분에 대한 마음에 어찌 다른 차별이 있겠느냐는 말까지 보탰다.

그이를 만난 지 두어 달이 지나 이윽고 탈상하는 날, 나는 그이의 눈물을 봤다. 3년 동안 하루에 세 번 씩, 신발조차 벗은 채 묘 앞에 서서 곡을 하던 모진 그이가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나중에 물으니 그래도 시묘살이 하는 동안은 어머니가 곁에 계시는 것 같았는데 영영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났다는 것이다. 탈상이 끝나고 그이는 가족들과 함께 떠났지만 나는 선뜻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이가 하루도 거르지 않은 채 다녔던 길을 되짚어 걸어 다녔었다. 묘 주변은 3년이 지나는 동안 고르게 떼가 입혀져 있었지만 그이가 날마다 묘로 향했던 길과 서서 곡을 했던 자리에는 떼가 자라지 않았다. 그것이 그이가 남겨 놓은 흔적의 전부였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비록 그이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이가 내 마음 속에 남겨 놓은 것은 너무도 크다. 그이와 헤어지고 난 후, 비로소 나는 부모들을 다시 찾기 시작했고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물꼬를 틀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은 그때부터 말하려고 했었다. 부모님,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까지 무려 8년 이라는 세월이 더 필요했다. 참 못났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내 자리를 찾으려 아등바등거린 것이 당신들이 원하는 것과 달랐을 뿐 그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감사한 것은 최소한 내가 택한 길을 당신들이 훼방을 놓지는 않은 것이다. 오히려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내가 섭섭하게 여겼을 뿐일 터이니 그것은 무관심과는 달랐던 것이다. 당신들의 자리는 부동이었을 뿐 움직인 것은 나였던 것이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움직이면서 내 생각에 동의해 주지 않는다고 까탈을 부리고 고약하게 굴었던 것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나 다르지 않다.

그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세상에 어찌 나 스스로 깨달을 수 일이 있겠는가. 바람, 그것을 그 자체로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바람은 다른 무엇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박상근씨 그이는 나를 비쳐주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를 통해 나를 보고 그이는 나에게 감춰져 있던 부모님들에 대한 마음을 일깨워 준 것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로소 뒤늦게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다. 나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 이상 낡아버리기 전에 윤이 나게 해 준 사람, 그리하여 가족이라는 것을 되짚어 생각하게 해 준 그이가 유독 5월이면 그리워진다. 당신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어떤가. 더 이상 낡기 전에 한번쯤 꺼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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