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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지누의인물로세상읽기] 내 마음의 아름다운 ‘생불’

등록 2006-06-15 20:16수정 2006-06-16 14:58

윤재옥은 17살에 강원도 양양의 어성전에서 대관령 아래로 시집와서 90살이 넘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70살이 가까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윤재옥은 17살에 강원도 양양의 어성전에서 대관령 아래로 시집와서 90살이 넘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70살이 가까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70년 넘은 두 칸 집마냥 한결같은 정에 이끌려
강냉이·고등어 한손 들고 대관령길
달랑 밥과 된장국 신김치만 차려줘도
‘꼬부랑 할머니’ 종종걸음 그 모습이 더 맛있다
올곧은 그 존재만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대관령 아래 사는 아흔살 윤재옥 할머니

이 기사를 보는 몇몇은 말할 것이다. 또 이 할머니냐고 말이다. 그리곤 그만 우려먹으라고 닦달을 할 것이다. 그러면 딱히 할 말이 없는 나는 그냥 씩 웃고 만다. 그들의 말처럼 간혹 다른 매체에도 윤재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발표 한 적이 있었으니 더러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단 한차례도 같은 사진과 같은 이야기를 쓴 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가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니와 만났다. 많게는 한 해 동안 열너덧 차례도 만나고 더러는 두어 번 남짓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그 만남 속에 서로 나눈 숱한 이야기가 어찌 하나일 것이며 찍은 사진들이 한결같겠는가.

어찌되었든 나는 앞으로도 그니를 만날 것이다. 그니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매력적인 그니를 향한 나의 걸음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 그만 우려먹으라지만

그니는 강원도 양양의 어성전이라는 후미진 산골에서 태어났다. 어느덧 그니의 나이가 90을 넘겼으니 학교는 언감생심,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것은 뻔한 일이다. 더구나 17살에 강릉의 대관령 아래에서 목상(木商)을 하던 최씨네로 시집온 이래로 줄곧 한 자리에 붙박이로 살고 있으니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기도 하다. 집이라고는 새 식구 맞는다며 시집에서 지어 준 집을 군데군데 손만 봤을 뿐 단 한차례도 뜯어고치지 않은 채 살고 있으니 서울의 아파트 값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리면 기가 차서 입만 딱 벌릴 뿐이다.


달랑 방 두개에 손바닥만한 마루가 전부인 집이지만 70년 동안이나 모진 비바람과 된 눈보라를 이기며 그 자리에 그대로이듯 그니가 지닌 매력 또한 한결 같음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난 6월2일, 가장 최근까지 그니는 도무지 변할 줄을 모른다. 겉모습이야 달라졌을 테지만 그니의 마음 씀은 한결같은 것이다. 그 때문에 나 또한 한결같이 그니를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디지털이니 유비쿼터스니 하는 다중분할의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한결같음은 그 자체로 이제 귀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그 귀한 것을 그니가 지니고 있으니 그니는 다분히 매력적인 것이다.

그니의 집에는 이제 죽을 때까지 원없이 텔레비전이라도 보겠다고 두 해 전 단 위성안테나 말고는 집 어느 구석에도 디지털이라는 낱말이 어울릴 무엇이 없는 집이다. 더구나 먼 길 왔으니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전기밥솥에다가 밥을 하기보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서 국을 끓이는 것 보다, 부엌 한쪽에 놓인 화롯불에 작은 밥솥을 걸치고 냄비에서 국을 끓이는 모습 또한 더 없이 매력적이다. 어릴 때 불렀던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꼬부랑 넘어가고 있네.”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허리가 휘어버린 몸을 하고서도 밥을 태우는 법이 없고 된장국이 흘러넘치는 경우가 없으며 산골에서 귀한 꽁치나 고등어가 까맣게 타버리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 맛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 익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고급 오븐에 구운 생선보다 그것이 더 맛나고 금칠을 했네, 동칠을 했네 하며 광고를 하는 전기밥솥의 밥맛이 화롯불에서 밥물이 흘러넘치며 밥이 누릇누릇 눌어붙는 그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그니가 꿈지럭거리며 오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만이 느끼는 진하고 깊은 맛인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귀한 사람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기계들이 제 아무리 다이아몬드 가루를 칠하고 나오더라도 흉내낼 수 없는 사람만의 맛인 것이다.

그 무엇보다 귀한 ‘사람’ 느끼는 것

대관령 아래에 사는 윤재옥씨의 집이다. 지은 지 70년 남짓하지만 그니에게는 모자람이 없는 집이다.
대관령 아래에 사는 윤재옥씨의 집이다. 지은 지 70년 남짓하지만 그니에게는 모자람이 없는 집이다.
오히려 모든 것이 미리 입력된 기계가 한결같기로는 더욱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살이라는 것은 보이는 결과가 한결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늘 같은 결과만을 내놓을 뿐이지만 사람은 때로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감동하는 것은 그 결과를 위한 마음인 것이다. 그니가 차려내는 밥상에 달랑 밥과 심심한 된장국 그리고 신 김치만 올라 와 있을 때도 있지만 그 밥이 유난히 맛난 것은 내가 먹는 것이 그니의 마음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산골 깊숙한 곳에 사는 자신을 찾아 준 사람을 위해 힘든 몸 마다않고 움직여 대접하려는 그 마음 말이다.

그것 또한 딴전을 부리다가 차려진 밥상 앞에 떡하니 앉아서 먹는 것과 그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 모습을 보는 것과는 그 맛의 감동이 너무도 다른 것이다. 나 또한 밥상을 앞에 두고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을 깨닫고부터 그니가 부엌에 내려가면 덩달아 부엌에 따라 내려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온다고 야단을 하지만 밥을 먹는 그 짧은 순간보다 밥을 하는 그 긴 시간, 그니가 종종걸음으로 몸을 움직이며 밥상을 차리는 그 모습이 더욱 맛난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그처럼 그니는 나에게 마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또 한 분의 스승이다. 그 때문인가. 그니를 만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 또한 사람들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그처럼 되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발길 닿는 곳 그 어디에도 우리들의 스승은 있으나 우리들의 눈이 멀어 그들을 찾지 못할 뿐인 것이다. 그것 또한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이 곤두서거나 날을 세우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을 풀어헤쳐 열어 놓으면 우리 땅 처처에 스승과 고수들이 넘쳐 난다.

백년 살아낸 모습이 그대로 부쳐

그것은 나를 내 세우지 않고 너를 보기 시작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본다.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내가 아닌 남에게 할애했는지 말이다. 나는 혹은 우리는 나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데 어찌 남을 생각할까라는 허울 좋은 벽 뒤에 얼마나 오래 동안 숨어 있었을까. 그 탓에 그니를 만나는 동안은 무척 행복했지만 돌아 서서 대관령을 넘을 무렵이면 밀려드는 쓸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니는 바늘과도 같은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큰 막대기로 아예 저 곳이라며 일러주는 것이 아닌,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바늘로 콕 찌르고는 모른체하는 그런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 바늘에 찔려 움찔하며 스스로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스승 말이다.

그니에게 찔린 곳이 무수한 상처가 되어 남아도 좋다. 그 상처만큼 나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잃어버렸던 사람으로서의 본래 면목은 반드시 부처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0년 가까이 한 세상 살아 온 사람들이 내 놓는 모습들은 그 자체로 이미 부처가 말하거나 행동했던 그 모든 것이니, 살아 움직이는 생불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니에게 갈 때마다 보시를 하곤 한다. 이가 없는 그니를 위해 튀긴 강냉이 한 보시기, 유난히 즐기는 고등어자반 한 손, 눈이 가득 쌓인 겨울이면 그니로서는 꿈도 못 꾸었을 빨간 하우스 딸기를 들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걷기를 마다 않았고, 여름이면 수박 한 덩이라도 보시를 해야 만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그니를 만날 때마다 바늘에 찔리는 수강료이기도 하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집불통이지만 그니 또한 만만치 않다. 내가 만난 그 세월 동안 그니는 단 한차례도 변하지 않은 채 올곧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니와 같은 분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귀한 존재이듯이 그들 또한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아름다운 것을 비로소 아름답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들의 눈은 밝아질 것이고 세상은 환하게 빛날 것이다. 그 희망을 정치에서 찾을 것인가. 그러지 마라. 내 속에서 찾아라. 내 속의 눈을 뜨고 사람들을 만나면 그 누구 하나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그니는 지극히 평범한 산골아낙이었을 뿐이고 촌로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그니를 부처에게까지 비유했으니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그니는 그저 시골길 걷다가 골목 어귀의 평상에 나 앉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오뉴월 땡볕의 밭이나 논에서 일을 하다 돌아 온 촌부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며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면 우리들은 결코 아름다운 존재들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탄광의 굴속과도 같이 어두컴컴한 곳이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빛나는 무엇들이 있게 마련 아니겠는가. 그것 찾으려면 내가 아닌 너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세상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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