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옥은 17살에 강원도 양양의 어성전에서 대관령 아래로 시집와서 90살이 넘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70살이 가까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70년 넘은 두 칸 집마냥 한결같은 정에 이끌려
강냉이·고등어 한손 들고 대관령길
달랑 밥과 된장국 신김치만 차려줘도
‘꼬부랑 할머니’ 종종걸음 그 모습이 더 맛있다
올곧은 그 존재만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강냉이·고등어 한손 들고 대관령길
달랑 밥과 된장국 신김치만 차려줘도
‘꼬부랑 할머니’ 종종걸음 그 모습이 더 맛있다
올곧은 그 존재만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대관령 아래 사는 아흔살 윤재옥 할머니 이 기사를 보는 몇몇은 말할 것이다. 또 이 할머니냐고 말이다. 그리곤 그만 우려먹으라고 닦달을 할 것이다. 그러면 딱히 할 말이 없는 나는 그냥 씩 웃고 만다. 그들의 말처럼 간혹 다른 매체에도 윤재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발표 한 적이 있었으니 더러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단 한차례도 같은 사진과 같은 이야기를 쓴 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가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니와 만났다. 많게는 한 해 동안 열너덧 차례도 만나고 더러는 두어 번 남짓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그 만남 속에 서로 나눈 숱한 이야기가 어찌 하나일 것이며 찍은 사진들이 한결같겠는가. 어찌되었든 나는 앞으로도 그니를 만날 것이다. 그니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매력적인 그니를 향한 나의 걸음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 그만 우려먹으라지만 그니는 강원도 양양의 어성전이라는 후미진 산골에서 태어났다. 어느덧 그니의 나이가 90을 넘겼으니 학교는 언감생심,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것은 뻔한 일이다. 더구나 17살에 강릉의 대관령 아래에서 목상(木商)을 하던 최씨네로 시집온 이래로 줄곧 한 자리에 붙박이로 살고 있으니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기도 하다. 집이라고는 새 식구 맞는다며 시집에서 지어 준 집을 군데군데 손만 봤을 뿐 단 한차례도 뜯어고치지 않은 채 살고 있으니 서울의 아파트 값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리면 기가 차서 입만 딱 벌릴 뿐이다.
달랑 방 두개에 손바닥만한 마루가 전부인 집이지만 70년 동안이나 모진 비바람과 된 눈보라를 이기며 그 자리에 그대로이듯 그니가 지닌 매력 또한 한결 같음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난 6월2일, 가장 최근까지 그니는 도무지 변할 줄을 모른다. 겉모습이야 달라졌을 테지만 그니의 마음 씀은 한결같은 것이다. 그 때문에 나 또한 한결같이 그니를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디지털이니 유비쿼터스니 하는 다중분할의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한결같음은 그 자체로 이제 귀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그 귀한 것을 그니가 지니고 있으니 그니는 다분히 매력적인 것이다. 그니의 집에는 이제 죽을 때까지 원없이 텔레비전이라도 보겠다고 두 해 전 단 위성안테나 말고는 집 어느 구석에도 디지털이라는 낱말이 어울릴 무엇이 없는 집이다. 더구나 먼 길 왔으니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전기밥솥에다가 밥을 하기보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서 국을 끓이는 것 보다, 부엌 한쪽에 놓인 화롯불에 작은 밥솥을 걸치고 냄비에서 국을 끓이는 모습 또한 더 없이 매력적이다. 어릴 때 불렀던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꼬부랑 넘어가고 있네.”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허리가 휘어버린 몸을 하고서도 밥을 태우는 법이 없고 된장국이 흘러넘치는 경우가 없으며 산골에서 귀한 꽁치나 고등어가 까맣게 타버리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 맛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 익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고급 오븐에 구운 생선보다 그것이 더 맛나고 금칠을 했네, 동칠을 했네 하며 광고를 하는 전기밥솥의 밥맛이 화롯불에서 밥물이 흘러넘치며 밥이 누릇누릇 눌어붙는 그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그니가 꿈지럭거리며 오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만이 느끼는 진하고 깊은 맛인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귀한 사람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기계들이 제 아무리 다이아몬드 가루를 칠하고 나오더라도 흉내낼 수 없는 사람만의 맛인 것이다. 그 무엇보다 귀한 ‘사람’ 느끼는 것
대관령 아래에 사는 윤재옥씨의 집이다. 지은 지 70년 남짓하지만 그니에게는 모자람이 없는 집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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