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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대작가 보르헤스를 주인공 삼은 추리소설

등록 2007-02-08 17:26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김라합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9800원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김라합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9800원
잠깐독서 /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은 보르헤스에 대한 문학적 오마주라 할 법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모래의 책> <돈키호테의 저자 피에르 메나르> 등의 ‘환상 소설’로 현대 문학은 물론 예술 전반과 미학, 철학 등 인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맹인 수도사 호르헤가 보르헤스를 모델로 삼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편이다.

브라질 작가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71)가 쓴 소설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에는 보르헤스가 변형을 거치지 않은, 실물 그대로 등장한다. 물론 소설인 만큼 구체적인 상황은 순전한 허구이지만, 소설 속에 그려지는 보르헤스의 모습은 그럴듯하다.

소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추리문학대회에서 발생한 밀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외양을 띠고 있다. 번역가이자 영어 교사인 포겔슈타인이 이 대회에 참석했다가 살인사건을 가장 먼저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한편, 역시 대회에 참석했던 대 작가 보르헤스와 함께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을 뼈대로 삼고 있다. 안에서 잠기고 걸쇠까지 걸린 호텔 방에서 칼에 찔려 죽은 인물은 독일 출신의 에드거 앨런 포 전문가 요아힘 로트코프 박사. 그는 대회에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모욕함으로써 만인의 원성을 사게 된다. 모두가 그를 죽일 타당한 이유를 지니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는 시체로 발견될 당시 로트코프가 거울 앞에서 ‘브이(V) 자’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 범인의 정체에 대한 암시라고 보고 추리를 진행해 나간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주도하는 추리는 경찰의 추리와는 달라서,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서부터 이 추리문학대회의 주제였던 에드거 앨런 포, 루이스 캐럴, 러브크래프트 등의 다양한 선행 텍스트를 전거로 끌어들이며 자못 방만하게 전개된다. 범인을 찾는다기보다는 추리 자체를 위한 추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던 보르헤스가 소설 결말에 가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범인을 찾아내는 놀라운 반전이 일품이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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