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삼국유사’ 사진전 연 양진씨
분단문제에 천착하던 나는 진즉에 경의선 복원을 주장하며 민족미술협의회 화가들과 함께 경의선모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1990년이었다. 그들과 함께 24시간 동안 꼬박 경의선 일대의 풍경을 찍어 ‘분단풍경’이라는 사진집도 내고 전시도 했다. 그 후, 10여 년간 우여곡절 끝에 휴전선 일대를 드나들며 사진작업도 하고 분단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분단사진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분류하여 구분하고, 나누어 무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구분된 나는 그 말이 무척 싫었다.
나는 제멋대로 튕겨나가는 스프링이거나 맘껏 휠 수 있는 탄력성을 지닌 사람이고 싶은데 사회가 나를 올곧은 막대기로 만들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사람’
내가 생각하는 삶은 어느 한쪽에 고착화되기보다 다양한 변주를 통한 실험의 가능성이 전제되는 것이다.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확보되면 그것에만 머무는 것을 마뜩치 않아하는 셈이다. 그렇게 획득한 전문성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지니며 자신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이야 말로 흥미진진한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봄을 재촉하며 흩뿌리는 는개를 맞으며 서울 역사박물관으로 찾아가 만난 양진(39)씨가 그런 사람이다. 마땅히 그를 두고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니 그냥 사람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1991년 나의 첫 개인전 전시장으로 찾아 온 그는 아직 학생이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용산전자상가의 두어 평 남짓한 공간에서 모뎀을 파는 장사꾼이었다. 당시 컴퓨터 통신의 확산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IMF의 호된 서리를 맞고는 용산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 올가미처럼 씌워졌던 신용불량자로서의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비록 잠시 맥이 빠졌을 뿐 삶에 대한 암중모색의 끈을 놓지 않은 그가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상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각종 상표검색과 특허관련 서비스를 시작했다. 2~3년이 지나 서비스가 안정되자 다시 웹디자인 쪽으로 영역을 넓혔다. 내로라하는 인기 영화들의 사이트는 물론 널리 알려진 목판화가인 이철수씨나 남궁산씨의 홈페이지를 비롯하여 기능적이며 맵시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으로 소문 나 있다.
그러나 내가 오늘 그를 만난 까닭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사진 때문이다. 그가 사진전을 열고 있다. 도서출판 현암사가 주최가 되어 『삼국유사』를 쓴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탄신 800년을 맞아 벌이는 ‘삼국유사특별전’에서 사진 분야를 책임 진 것이다. 휘둘러 본 사진들은 「삼국유사」의 현장들을 애써 다니며 찍은 것들이었다. 그것도 잠시잠깐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반복적으로 매만진 모습이 드러나는 사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는 한 그가 『삼국유사』의 현장을 배회하기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 되었다. 전시장으로 나를 찾아 왔을 무렵부터였으니 15~6년 남짓한 만만치 않은 세월이 녹아 든 사진들인 셈이다.
경주 대릉원. 양진씨는 <삼국유사>의 배경을 누비며 찍은 사진으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그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이다. 금속공학을 전공하던 대학시절에도 서클 활동을 하며 사진을 찍었으며 지금도 내 보기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다. 왜 사진을 그토록 찍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경쾌하고 분명하다. “재미있으니까요.” 그것뿐이다. 하긴 사진 찍는데 뭔 이유가 그리 많을까 싶기도 하다. 그에게 사진은 놀이이며 촬영대상이 있는 장소의 자연과 문화환경을 즐긴다. 그 때문인지 더러 혼자 가기도 하지만 주말이면 아내나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후, 자신을 흥분시키는 재미난 놀이에 몰두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그는 그 행복을 만끽하는 셈이다. 더구나 그것이 소비적인 놀이가 아닌 생산적인 놀이임에랴. 그 때문인가. 그는 언제나 자신에 차 있으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일연스님 탄신 800돌 기념전
그렇지만 내 보기에 그는 아마추어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마추어란 프로에 비해 실력이 못하거나 솜씨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지금껏 우리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밥벌이의 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그것으로 스스로이거나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구분되어야 할 것일 뿐 솜씨와 실력은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그를 사진의 아마추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얕잡아 보는 말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은 웬만한 프로페셔널들을 능가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사진 문화에 있어서 탄탄한 아마추어리즘은 어지간한 프로들을 꼴사납게 만들었다. 그에게 자극 받은 사진가들의 분발이 곧 지금의 일본 사진 문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은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아마추어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 질적 수준이 어떠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양태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너도 나도 모두 프로가 되기를 원한다. 뿌리와 줄기는 돌보지 않으면서도 서로 앞 다투어 아름다운 꽃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프로가 되기 위해 그들은 근사하며 비싼 사진기와 큼지막한 렌즈를 사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정작 스스로가 무엇을 왜 찍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면서도 말이다. 잘못된 것이다. 13~4년 전쯤인가. 전교조 문화국에서 사진 강좌를 한 적이 있었다. 강좌를 잘 하지 않는 나로서는 조건을 달았는데 그것은 자동 사진기, 곧 초점이나 노출을 제어 할 수 없는 흔히 말하는 ‘똑딱이’ 사진기를 가진 교사들만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한 달 간의 강의가 끝나고 사진작업을 하자고 했더니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한다는 말이 이런 사진기로도 작업을 해서 책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1년의 시간이 흐른 뒤, 우여곡절 끝에 <멈춘 학교 달리는 아이들>이라는 사진집이 세상에 나왔고 그 책은 선생님의 손으로 학교 안의 모습을 찍은 최초의 사진집이 되었다. 그것은 교육현실에 대한 교사들의 말하기의 또 다른 방법이었다. 강력하고 도발적인 구호만이 교육현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구호 대신 사진기를 들었고 교육현장에 밀착된 그들이 찍은 사진들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었다. 보잘 것 없어 기념사진이나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근사하고 비싼 사진기 옆에서 괜한 주눅이 들곤 하던 초라한 사진기를 가진 교사들이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것이다. 그것은 곧 사진은 사진기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찍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값비싼 만년필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대상에 대해 얼마나 천착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전문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싸구려 볼펜일지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과도 같다.
양진 씨의 사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해박한 인문적인 지식을 바탕에 둔 남다른 안목이 돋보이는 것이다. 60장 남짓하게 걸린 사진 속에는 흥겨움이 배어 있으며 눈 내린 경주의 모습들은 잦은 발걸음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귀한 사진들이지 싶다. 그러나 좋은 사진이란 부지런하다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백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아름다운 장면과 조우할 수 있었던 까닭 또한 오래도록 『삼국유사』에 대한 깊은 천착으로 얻은 결과일 것이다.
아마와 프로, 밥벌이 차이일 뿐
사진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곧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표현이란 자신을 감춤 없이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16년 남짓, 줄곧 그를 봐 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한 번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욱 왕성한 작업으로 아마추어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갈 곳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사진기의 렌즈들이 제각각 제자리를 찾아 갈 수 있게 하는 소박한 지표가 되었으면 싶다. 글머리에 말했듯이 아마추어라는 존재는 그것대로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아마추어라고 말하는 그 또한 아름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