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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지누의인물로세상읽기] 사진의 자리 지키는 힘!

등록 2006-03-23 19:46수정 2006-03-24 14:29

인터넷과 동맹 맺은 ‘디카’ 거침없는 질주
쏟아지는 이미지 어디로 향하나
사진잡지 만들어 방황하는 렌즈 길잡이역
“가장 가까운 가족 먼저 찍어 보시죠
한 권 두 권 앨범 쌓일 때면 당신은 이미 전문가”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포토넷’ 발행인 최재균씨

내가 사진기를 처음 가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1970년대 중반이었던 그 즈음만 해도 자기소유의 사진기를 가진 고등학생을 보기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그 선택받은 사람 중 하나였고 친구들로부터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아야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600명 남짓한 동급생들 중 사진기를 가진 사람은 불과 두어 명 밖에 되지 않았었다. 마침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대개는 소풍 장소까지 따라 온 ‘사진’이라는 노란완장을 찬 아저씨들에게 기념사진을 맡기기 일쑤였고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학교 앞 사진관에서 빌려 온 작은 사진기로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거나 그 귀한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친구를 조르곤 했다. 모두 흑백사진이었던 그 시절, 필름현상과 인화를 사진관에 맡기는 조건으로 싸게 혹은 공짜로도 사진기를 빌릴 수 있었었다. 그런 지경이었으니 내가 사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깨를 으쓱거리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는 사진을 찍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혹은 회갑과 같은 집안의 대소사이거나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소풍이나 수학여행과 같은 일이 아니면 장롱 속에 근엄하게 들어앉은 사진기가 밖으로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니 1년 이면 20장 남짓한 필름 한 통을 다 쓰기도 버겁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마치 옛 이야기하듯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로부터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짧은 세월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와 지금을 견주어 보면 격세지감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사진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치러진 아시안게임 전후이지 싶다. 흔히 말하는 자동사진기라는 것이 그 무렵 대량으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일본의 내로라하는 사진기 메이커가 한국에 들어 온 것 또한 그맘때였다.

하지만 사진기가 흔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장롱을 지켰으며 이윽고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들 곁으로 다가 와 필수품처럼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필름을 사용하던 아날로그 사진기를 밀어제치고 디지털 사진기가 우리들 곁으로 온 것이다. 더구나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그 무렵 불쑥 고개를 들며 대중화 되고 난 다음부터 그 둘은 서로 견고한 동맹관계를 맞으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뽐내며 걷잡을 수 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전자공학도가 사진작가로


오늘 만난 이는 그 질주를 어떻게 해서든지 바르게 가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다. 올해 서른넷인 최재균씨는 이라는 사진잡지의 발행인이다. 썩 대중적이지는 않은 예술지향적인 잡지이긴 하지만 그에게도 이 현실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이 현실이란 정제되지 못한 이미지의 마구잡이 생산과 그로 인한 혼탁함을 말한다.

디지털 사진기만 보급되고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동맹관계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지금과 같은 시대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교묘하게 우리들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와 버렸으니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적절하게 소비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잘 소비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사진이라는 매체가 우리를 소비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지나친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어느 순간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 되어 버렸고 그 과학과 기술에 매몰된 다수의 사람들은 사진보다는 더욱 사진기 자체에 집착하며 함락 당하고 있는 듯 하다. 사진의 방법이나 내용보다는 과학이 빚어내는 그 감동스러운 기술의 발전에 사진의 방법이나 내용조차도 기대하며 맡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5년 남짓하게 전자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해 사진을 전공한 최재균씨에게 물었다.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고 말이다. 그는 상당히 긍정정적이었다. 사진에 대한 관심이나 저변 인구의 확대가 절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또한 수직구조로 봐서 아래층이 두터워 지는 만큼 상층 또한 같이 두터워 지는 것이니 별로 염려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사진기를 처음 가지는 사람들의 렌즈들이 방황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렌즈는 무작정 길 떠난 나그네처럼 갈 곳 몰라 하기 일쑤이며 더러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젊은 나이에 사진 잡지를 만드는 여러 가지 까닭 중 하나는 방황하는 렌즈들이 제 갈 길을 정확하게 찾아가게 해 주려는 것 때문이라고도 했다.

사진 저변 넓어져 좋아요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가 펜이나 종이를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 또한 접근이 쉬운 현실이지만 그 모두가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공부가 따라야 하는 것처럼 사진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글이라고 하는 것과 사진이라고 하는 것에는 차이를 둬야 한다. 글은 그 누구도 쉽게 발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은 인터넷 공간에 그 누구도 쉽게 발표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쓴 일기이거나 혹은 사물을 보고 느낀 자기만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서툴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것에 대해 글을 쓰기를 저어하고 또한 썼다고 하더라도 발표하는 것을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 사진은 그렇지 않다. 비록 글을 쓰지 못할지라도 사진으로 그것을 대신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 뒤에 스스로를 숨기려는 생각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 뒤에는 숨기 어렵지만 이미지 뒤에는 숨을 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진 또한 글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자신만의 생각이 정제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물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무엇을 대상으로 찍으면 좋겠는가 하고 말이다. 대답은 의외로 간결했다. 그 처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잘 할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평소 자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대상들에게로 사진기가 향하여 세월을 거듭하면 프로 사진가들 못지않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다른 누구보다 애정이 깊으며 애정이 깊은 만큼 천착의 정도 또한 남다를 테니 사진의 내용이 깊고 풍부할 것은 뻔한 일이다. 두 번째로는 대상을 멀리에서 찾지 말고 자기주변에서 찾으라는 것이다. 가령 가족사진과 같은 것들은 아주 좋은 예일 것이다. 너무도 흔해 오히려 그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족사진이다. 곰곰 생각해봐라. 자신의 사진기로 친구들을 찍은 것 보다 가족을 찍은 횟수가 많은지를 말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있다면 모를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형제들이나 부모님들에게는 더욱 그랬으리라. 하지만 최재균씨도 그렇고 나 또한 같은 생각이지만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은 사진이 바로 가족사진이다.

사진도 글처럼 자신 고스란히

요즈음은 비디오 시대라고들 하지만 사진의 자리를 그것이 채우지는 못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법을 지니고 있어 동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디오를 틀기 전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비디오가 시작되면 그만 정적에 휩싸이고 만다. 간혹 자극적인 장면들이 나오면 순간순간 흘러나오는 감탄사들이 허공을 메울 뿐인 것이다. 하지만 고요하던 거실에서 사진이 가득한 앨범을 펼치는 순간, 이야기꽃이 피게 마련이다. 그것이 사진과 비디오의 차이점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비디오는 스스로 말과 소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사진은 그렇지 못하기에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며 보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모이는 날, 오래 묵은 사진을 꺼내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웃음꽃이 피는가하면 슬픈 기억들도 고스란히 그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아직 젊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진잡지의 발행인인 그가 권하는 대로 해보지 않겠는가. 당신의 관심사가 집중된 사진들이 켜켜이 쌓이거나 가족들의 살가운 모습들이 한권 두권 앨범으로 쌓일 무렵에는 당신 또한 그 분야에서만은 프로 사진가 못지않은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당신의 가족은 그 누구도 쉽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을 수 없는 당신만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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