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동맹 맺은 ‘디카’ 거침없는 질주
쏟아지는 이미지 어디로 향하나
사진잡지 만들어 방황하는 렌즈 길잡이역
“가장 가까운 가족 먼저 찍어 보시죠
한 권 두 권 앨범 쌓일 때면 당신은 이미 전문가”
쏟아지는 이미지 어디로 향하나
사진잡지 만들어 방황하는 렌즈 길잡이역
“가장 가까운 가족 먼저 찍어 보시죠
한 권 두 권 앨범 쌓일 때면 당신은 이미 전문가”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포토넷’ 발행인 최재균씨 내가 사진기를 처음 가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1970년대 중반이었던 그 즈음만 해도 자기소유의 사진기를 가진 고등학생을 보기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그 선택받은 사람 중 하나였고 친구들로부터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아야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600명 남짓한 동급생들 중 사진기를 가진 사람은 불과 두어 명 밖에 되지 않았었다. 마침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대개는 소풍 장소까지 따라 온 ‘사진’이라는 노란완장을 찬 아저씨들에게 기념사진을 맡기기 일쑤였고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학교 앞 사진관에서 빌려 온 작은 사진기로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거나 그 귀한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친구를 조르곤 했다. 모두 흑백사진이었던 그 시절, 필름현상과 인화를 사진관에 맡기는 조건으로 싸게 혹은 공짜로도 사진기를 빌릴 수 있었었다. 그런 지경이었으니 내가 사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깨를 으쓱거리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는 사진을 찍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혹은 회갑과 같은 집안의 대소사이거나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소풍이나 수학여행과 같은 일이 아니면 장롱 속에 근엄하게 들어앉은 사진기가 밖으로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니 1년 이면 20장 남짓한 필름 한 통을 다 쓰기도 버겁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마치 옛 이야기하듯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로부터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짧은 세월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와 지금을 견주어 보면 격세지감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사진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치러진 아시안게임 전후이지 싶다. 흔히 말하는 자동사진기라는 것이 그 무렵 대량으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일본의 내로라하는 사진기 메이커가 한국에 들어 온 것 또한 그맘때였다. 하지만 사진기가 흔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장롱을 지켰으며 이윽고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들 곁으로 다가 와 필수품처럼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필름을 사용하던 아날로그 사진기를 밀어제치고 디지털 사진기가 우리들 곁으로 온 것이다. 더구나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그 무렵 불쑥 고개를 들며 대중화 되고 난 다음부터 그 둘은 서로 견고한 동맹관계를 맞으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뽐내며 걷잡을 수 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전자공학도가 사진작가로
오늘 만난 이는 그 질주를 어떻게 해서든지 바르게 가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다. 올해 서른넷인 최재균씨는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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