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이지누 글·사진. 호미 펴냄. 2만4000원.
이지누 글·사진. 호미 펴냄. 2만4000원.
잠깐독서
2004년 초가을, 그에게 뭔가 일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그는 “더 이상 오르지 않기로 작정”하고 길을 떠났다. “떠돌다가 발길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폐사지였다. 내가 물이라면 그 곳은 바다와 같았다. 비로소 그 곳에 다다라서야 높이에 대한 욕심을 하나씩 허물 수 있었으며, 욕심이 사라질수록 편안해졌다.”
그런데 왜 하필 ‘폐사지’란 말인가? 다시 의문이 인다. “1989년 구산선문(九山禪門)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유독 폐사지로 변한 곳이 많았으니, 그 자취를 좇아 길을 나설 때마다 폐사지의 묘한 매력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스쳐 가는 사람들도 드물며 미술사의 눈으로 볼 것 또한 그리 많지 않은 그 곳이 나에게는 곧 독락(獨樂)의 선방이었으며 무문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텅 빈 절터에서 과연 깨달음을 얻었을까? “(부처와 노자와 함께 한)이 만행의 길에서, 내가 얻은 가장 귀한 것은, 멈추었다는 것이다.”
어딘가 낮익은 말법의 이 책의 저자는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를 연재중인 바로 그이다. ‘이지누의 절터 톺아보기’란 부제처럼, 그는 적막한 공간에서 눈에 보이지 않되 그 만이 발견하고, 느끼고, 깨달은 사유의 흐름을 꾸밈없이 찬찬히 기록해 놓았다. ‘글쓰는 사진가’답게, 신새벽부터 해지도록, 때로는 온밤을 새우며 ‘뚝심’ 하나로 버티며 렌즈에 담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218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길을 나선 이후 500일, 7만2000㎞를 달려 70군데 절터를 답사했다. 그 가운데 지난해 3월부터 연말까지 <불교신문>에 같은 제목으로 41군데 연재했고, 다시 그 중에서 25군데를 가려 ‘강원도 경상도 편’이 첫번째 권으로 나온 것이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편’, ‘경주 편’도 잇달아 나올 예정이다. 더구나 전국에 절터가 2000군데가 넘고, 그는 “본래 내가 있던 자리, 그 곳에 닿을 때까지 폐사지로의 만행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차분히 그의 ‘구도행’을 따라가 볼 일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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