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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의인물로세상읽기] ‘문명 보톡스’ 거부하고 ‘곡선’을 지키는 사람들

등록 2006-04-06 19:21수정 2006-04-07 14:10

산수유 곱게 핀 들길을 걸어오는 지리산생명연대 상근자들, 오른쪽이 사무처장인 윤정준씨, 가운데가 김혜경 왼쪽이 최화연 간사다.
산수유 곱게 핀 들길을 걸어오는 지리산생명연대 상근자들, 오른쪽이 사무처장인 윤정준씨, 가운데가 김혜경 왼쪽이 최화연 간사다.
지리산 허리 곳곳 잇닿은 직선도로 확장에
능선 움푹 파이고 정상엔 주차장
“공사판 더는 안된다” 남원 주민들과 손잡고
인월~산내 2차선 확장 막아냈다
마을지도까지 건네주는 소박한 얼굴에 눈인사라도!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지리산생명연대 윤정준·김혜경·최화연씨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이틀인가 집에 머물며 짐을 꾸린 나는 늦은 밤에 용산역에서 완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리산으로 가려던 것이었다. 10시가 거즌 다 되어 기차에 탄 우리 일행은 새우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5시가 가까워서야 섬진강변의 구례구역에 내릴 수 있었다. 역전 근처의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터덜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려 화엄사 입구에 다다른 것이 7시경, 화엄사를 휘둘러보고는 곧장 노고단으로 올라 일찌감치 텐트를 쳤다. 머나먼 지리산 종주에 나선 것이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로서는 12명의 고등학교 1,2학년들이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에 나선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서 내처 한라산까지 오르고 돌아오니 개학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었다. 부모님들과 선생님에게 된통 혼이 나기도 했고 몸이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더군다나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처럼 전국을 떠돌며 살게 되었으니 지리산이 나에게 단초를 제공한 것이나 다르지 않다.

옛길 사라진 지리산 가슴 아파

그 후로도 매력적인 지리산 능선을 잊을 수 없어 더러 다녀왔지만 3년 전에 다녀오고는 더 이상 종주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길이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나 하나 가지 않는다고 달라진 길이 예전처럼 되돌려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옛 기억을 가진 사람이 지금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사뭇 가슴 아픈 일이다. 어렴풋하지만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안내판조차도 변변치 않았던 당시의 길은 지금의 능선 길과는 달랐다. 노선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움푹 파이지도 않았고 넓지도 않았던 것이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니 세월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사람의 발길이 그리 한 것이다. 그러니 그처럼 상처 입은 그 길에 내 발길까지 보탠다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리산은 내 개인사에 있어 진하게 찍힌 방점과도 같은 곳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지리산은 여전히 나에게 매력적이다. 이번 봄에만 하더라도 벌써 지리산 언저리를 네 번이나 다녀왔다. 그 중 한 번은 정령치에서 바래봉을 거쳐 운봉읍으로 내려서는 능선을 걸었다. 물론 그 길 또한 예전과는 달랐다. 더구나 정령치 정상은 행글라이더나 패러글라이더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륙장소로는 그만인 곳이었기에 대머리 벗겨지듯 민머리가 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그 뿐이랴. 정상 가까이에 만든 주차장이며 그곳으로 오르는 도로 또한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지리산 구석구석 자동차도로가 뚫리며 산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산길이 그러할진대 다른 길들은 또 여북하겠는가. 요즈음은 모두 네비게이션이라는 항법장치를 자동차에 달고 다니는 통에 지도책 펼치는 일이 줄어들었겠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도책에는 공사중이라는 표시가 많았다. 더러는 완공되어 표시가 사라진 곳들도 있겠지만 다시 시작한 도로 공사가 그때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4차선 생긴 뒤 쇠락한 덕산

이번에 만난 사람들은 자칫 지도상에 공사중이라고 표시될법한 길을 공사를 하지 못하게 막은 이들이다. 그 길은 남원시 인월면에서 산내면까지 왕복 8Km의 60번 2차선 지방도로 이며, 그 일을 주도한 이들은 지리산 자락인 실상사 앞에 지리산생명연대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이들이다. 사무처장인 윤정준(40), 간사인 김혜경(35)과 최화연(35)이 그들이다. 그러나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들은 그 일은 주민들 스스로가 해냈으며 자신들은 주민들을 깨우치고 부추긴 것 밖에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열성이어서 주민들과 함께 인근의 유사한 지역에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는데 그곳은 같은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덕산 일대이다. 마침 그곳은 내가 매년 매화를 보러 다니는 곳이러니 그들의 말이 더욱 와 닿았다. 남명 조식의 공부방이었던 산천재가 있는 그곳은 마을을 우회하는 4차선 도로가 뚫리고부터 마을 경제가 눈에 띄게 쇠락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 자락의 중산리로 향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마을을 거치지 않고 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을 숱하게 다닌 나로서는 왜 그곳에 4차선 도로가 생겨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갓지다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도로는 항상 텅 비어 있으니까 말이다.

우회도로를 만들거나 도로를 넓히는 이유 중 가장 으뜸은 그 길을 오가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항상 정체를 빚기 때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주민들의 편리한 생활을 도모하고 순조로운 물류이동이나 관광객들의 이동이 낳는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여 공사 진행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 안 곳곳에 교통량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터무니없는 도로가 건설되고 그로 인한 국세 낭비와 자연이나 경관의 훼손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민을 위하지 않는 도로건설로 누가 이익을 보는 것일까. 그것까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눈앞에 이익도 없는데 선뜻 나서는 업자들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공사는 민간업자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며 공무원들이 연계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니 참 의아한 일이다.

또한 도로 공사를 진행하는 측에서 내 세우는 것 중 으뜸은 속도이다. 이동의 거리가 짧아지고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모든 것이 윤택해지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우리들이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거리가 짧아져서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는 것은 곧 모든 길을 직선으로 만든다는 것과도 같다. 우리들의 길은 골과 강을 따라 에둘러 가다가 드물게 고개를 넘기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곧 구불구불한 곡선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길이다. 아니 예전의 기술로는 자연을 거스를 재주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산악지형의 나라답게 터널을 뚫는 기술이 세계최고라는 것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 나라 안의 큰 고개들은 죄 터널로 바뀌어 버렸다. 험한 곡선이 반듯한 직선으로 된 것이다. 하물며 대개의 직선은 높낮이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휘어진 곳은 반듯하게 펴고 높은 곳은 터널을 뚫어서 말이다.

그것은 몹시 유혹적인 문명의 보톡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어찌 평평하여 밋밋하며 굽이진 곳이 없는 직선으로만 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지리산생명연대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 보톡스를 마다했기 때문이다. 길은 속도가 지배하는 형이하학적인 곳만은 아니다. 그곳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다. 자동차가 다닌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알게 모르게 그곳을 오가는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 그렇기에 길은 형이상학적인 곳이다. 기신기신 고개를 올라가 잠시 다리쉼을 하며 바라보는 정경의 추억을 가진 자와 고개의 높이를 기억하지 못한 채 터널을 쑥 빠져 나가는 자와는 삶의 방법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길이 곧 생각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들은 대개 아무 곳에나 자동차를 세우지 못하게 한다. 휴게소라는 정해진 장소에만 자동차를 세울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길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장면들은 제각각의 서정에 따라 서로 다를진대 내 마음대로 멈출 수도 없으니 이 또한 난감한 일이 다. 속도를 얻은 대신 우리에게 주어진 통제인 것이다.

길은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지리산생명연대가 주민들과 함께 힘을 합해 막아 낸 인월면에서 산내면까지의 길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지 싶다. 비록 좁고 구불구불하여 운전하기 힘이 들 지언 정 무엇보다 소중한 곡선을 지켰으니 말이다. 지난 해 말에는 그 길 곁으로 옹기종기 들어 선 마을들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마을지도까지 만들어 나누어 주고 있으니 그들의 고마움은 크기만 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이들의 말에 동의하여 힘을 합해 준 인월면과 산내면의 마을 주민들이지 싶었다. 혹 지리산으로 가는 길 있으면 부러 60번 지방도로를 달려봐라. 그리고 순박한 얼굴을 한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눈인사로라도 어루만져 드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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