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 없었다면 칭기즈칸도 목동에 불과하다며
광고는 목동의 삶을 순식간에 실패자로 조롱하고
대한민국은 바른 길 가고 있다고 애국심을 자극한다
그 순간 정부는 미국에 민생주권을 넘겨주려 하는데도
광고는 목동의 삶을 순식간에 실패자로 조롱하고
대한민국은 바른 길 가고 있다고 애국심을 자극한다
그 순간 정부는 미국에 민생주권을 넘겨주려 하는데도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기괴한 신조어가 출현할 무렵이다.
티브이를 보다가 아연해진 순간이 있었다. ‘무기를 든 채 말을 타고 용맹하게 달려오는 정복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용맹한 무사는 무기 대신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꾀죄죄한 양떼를 모는 초라하고 희화적인 모습의 목동으로 변한다. 이 장면들 위로, 야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칭기즈칸도 별 볼일 없는 일개 목동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1분도 안 되는 한 편의 광고를 보면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양떼를 치는 목동의 삶이 순식간에 조롱의 대상, 실패자로 희화되는 이미지의 폭력 때문이었다. 야망을 가지고 정복에 성공하지 않았으면 칭기즈칸도 초라한 목동으로 살다 무가치하게 사라졌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전언. 목동의 삶이 왜 나빠? 왜 무가치해? 조금 덜 가지고 소박한 자유를 꿈꾸는 삶을 살 수도 있잖아? 라고 물을 수 있는 여백이 차단된 자리에, 정복하여 획득한 자가 아니면 실패한 자로 각인되는 이항대립의 가치관이 느껴져 섬뜩했다.
위의 광고에서 내가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면, 분노를 느낀 광고도 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꿈꾸셨던 대한민국입니다/ 저마다 힘을 가질 때 나라가 힘을 갖는다는/ 희망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가 된다는/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그 이름에 희망이 있습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국정홍보처의 광고다. 촌스러운 옛 ‘대한뉴스’가 아니다. 이미지나 음악, 잘 앉혀 놓은 목소리까지,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되게 만들어진 이 광고는 호소력도 대단해서 아주 말초적으로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정체 모호한 울컥한 ‘애국심’까지 자극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속삭이는 관변 광고가 공중파를 타고 안방으로 매끄럽게 전달될 때, 대한민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절망에 빠진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고 그 와중에 생사가 엇갈린 농민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제 발로 미국에 가져다 바친 반 토막 난 스크린 쿼터가 있었고, 자기 땅에서 농사짓다 평화롭게 눈감고 싶다는 노인들을 미군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제로 쫒아내려는 공권력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사태는 피눈물 나는 현재형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배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이라는 꼭짓점을 향해 직간접으로 얽혀 있다.
거두절미, 군사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나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되어 줄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미국이 탐내는 것은 패권국의 욕망이 사그라들 줄 모르는 미국의 입장에선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도 납득하기 힘든 우리 정부의 태도다. 유린되는 자기 백성들의 피눈물을 닦아 주고 손잡아 일으켜 함께 살길을 도모해야 할 정부가 농업을 내주고 영화를 내주고 의료분야를 내주고 차례차례 우리의 식생활/문화/건강을 저당 잡히며 별안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1년 안에 완결시켜야 한다고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이 협정을 ‘우리 정부 주도하에’ 진행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세상에! 정부 주도하에 대한민국 민생의 주권을 미국에 내놓겠다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저 기이한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더욱 문제는 정부가 이렇게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정작 국민들은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농업, 보건의료, 영화와 방송, 교육, 서비스, 금융, 전자상거래, 노동, 환경 등 국민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와 군사적 문제까지 민감하게 얽혀 있는 엄청난 규모의 협정을 정부는 1년 안에 끝내겠다고 졸속으로 서두르고, 정부 대변단체들은 말이 없고, 이 협정으로 얻을 것이 훨씬 많은 재벌과 유착해 있는 보수언론은 약속한 듯 입 다물고 방송도 입 다물었다. 조용하다. 이 조용함 속에 자발적이거나 혹은 몹시 수동적인 ‘통제 문화’의 유령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래서 두렵고, 모독감을 느낀다. 협정 체결 과정의 폐쇄성과 정부가 벌이는 일종의 영웅주의적 도박심리에 분노가 생긴다. 아니 거대한 명분까지도 필요 없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내 삶이 연계해 있는 다양한 삶의 거처들을 상층부의 누군가 폭력적으로 규정하려고 하는 사태에 대해 자존감의 상실과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가 나의 일상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에 종속된 자본과 권력의 횡포라니!
국민적 의견수렴이나 의사소통 과정에 대해선 쉬쉬하다가 벼락 때리듯 팔, 다리를 뚝 잘라놓고는 협정 체결만이 대한민국의 미래이니 떠들지 말고 따라오라는 권위적 태도. 왜 정부를 못믿냐는 오만한 윽박. 그런데 우리 정부의 그 ‘장밋빛 청사진’의 실체는 들여다볼수록 그야말로 아찔하다. 도박판과 너무 닮았다. 거짓 진단과 과장이 넘친다. 당분간은 어떻게든 견뎌낼지도 모르지만 다음 세대의 우리 아이들이 이 엄청난 수렁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까 싶다. 다행히 이미 다양한 층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지속되어 왔고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싸움의 대열을 위해 모이고 있다. 정부여. 제발, 귀를 열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 들으라. ‘희망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가 된다는’ 국정홍보 광고를 믿고 싶다. 희망 가지고 싶다. 막무가내 밀어붙일 문제가 아니라 한달 내내 티브이 공개 토론을 진행하고 국민투표에 부쳐도 모자랄 사안이다. 내려와서,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지, 제발 좀 들으라.김선우/시인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