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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다 터져도…순자의 노는 멈추지 않는다

등록 2008-07-14 19:26수정 2013-03-04 15:59

“물을 탁 펐을 때 귓가에 노랫소리처럼 ‘삭삭’ 소리가 들려요.” 순자씨는 잔잔한 물을 잡으며 배가 나가는 기분이 물 위를 사뿐사뿐 걷는 것 같다고 했다. 골인을 할 때 쯤 되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힘든 카누 경주다. 한여름 바람이 불면 더 힘들다. “ 순자 언니는 진짜 카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대표팀 막내 국주가 놀린다.  춘천/조소영 피디 <A href="mailto:azuri@hani.co.kr">azuri@hani.co.kr</A>
“물을 탁 펐을 때 귓가에 노랫소리처럼 ‘삭삭’ 소리가 들려요.” 순자씨는 잔잔한 물을 잡으며 배가 나가는 기분이 물 위를 사뿐사뿐 걷는 것 같다고 했다. 골인을 할 때 쯤 되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힘든 카누 경주다. 한여름 바람이 불면 더 힘들다. “ 순자 언니는 진짜 카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대표팀 막내 국주가 놀린다. 춘천/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송기자·조피디의 스포츠다큐
<5>올림픽 카누 홀로 출전하는 이순자
11남매중 여덟번째로 태어나
산골 지게질로 다져진 힘덕에
카누와 인연 올림픽 출전까지
“결선진출 행복한 꿈 저어요”

어머머머, 우와와와. 지금 물보라는 바나나보트에 매달린 사람들의 몸 여기저기를 작정하고 간지럼 태우고 있다. 후, 후…, 후, 후…. 보트에서 물살이라도 밀려오면 물 젓는 노엔 바짝 마른 입에서 새나오는 숨이 더 실린다. 물풀은 가녀린 듯 하나 여리지 않다. 배를 가로막겠다며 버티는 저 심보를 보시라. 춘천 의암호엔 여름이 좋은 ‘바나나’가 있고, 여름과 싸우는 배가 있다. 카누국가대표들인데,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카·누…, 그게 뭐더라?

[스포츠다큐] 카누대표 순자의 전성시대

그건 전라도 장수군 계남면, 그러고도 저기 궁양리 산골에 살던 엄마도 그랬다. 엄마는 담배, 고추, 벼농사로 2남9녀, 11남매를 키웠다. 애들 아빠가 논에서 농약을 치다 쓰러져 느닷없이 떠나간 게, 딸 중엔 일곱번째, 통틀어 여덟번째 서열인 순할 순·아들 자, 순자 열두살 때 일이다. 집에선 형자라고 불렸던 순자는 지게질도 하며 “똑부러지게 일을 돕던” 애였다. 힘이 세긴 했는데, 전북체고에 원서를 넣더니 카누란 걸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육상을 1지망으로 올렸는데, 줄 잡고 올라가는 테스트에서 ‘그놈’의 지게질했던 힘이 불쑥 나와버렸고, 카누 감독의 눈에 딱 걸린 것이다. “처음엔 카누에 ‘카’자도 몰랐고, 물을 무서워했다”던 딸은 엄마에게 그냥 “배타는 운동이예요”라고 설명할 도리밖에 없었다. 날렵한 배에 앉아 ‘노’ 하나를 두 손으로 잡고, 왼쪽 오른쪽 물저어가며 앞을 보며 가는 종목인데요, 진행방향과 등지고 앉아 배 양끝에 설치된 노를 저어 가는 ‘조정’과는 또 달라요, 라고 말씀드렸으면 엄마가 다 이해하셨을까? “풀만 먹고 자란 애가 무슨 운동이냐”는 엄마에게, “카누는 물과 대화를 하는 거예요. 노 젓는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진짜 어디론가 계속 그 물살을 가르면서 가고 싶어져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올해 나이 서른, 고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배를 들었다. 누군가 “카누하고 결혼할래?”라고 묻는다면 순자씨는 “예, 할게요.” 라고 대답할 거란다. 그만큼 좋다는 거다.
올해 나이 서른, 고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배를 들었다. 누군가 “카누하고 결혼할래?”라고 묻는다면 순자씨는 “예, 할게요.” 라고 대답할 거란다. 그만큼 좋다는 거다.
이순자(30·전북체육회)는 6월부터 의암호 근처 모텔에서 직접 빨래하고 지내며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 낮에 수상훈련하고, 밤 10시쯤 웨이트트레이닝을 끝내고 혼자 터벅터벅 돌아올 때면 놀러온 이들이 지펴올린 삼겹살 냄새는 가장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전국체전 8연패, 국가대표 12년째. 키가 1m59밖에 되지 않는 그는 지난 5월 아시아선수권에서 2위를 해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땄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도 해냈구나, 내가 가는구나” 그 스스로도 감격했고, 카누계는 쾌거라며 들썩였다. 카누가 1988년과 92년 올림픽에 간 적이 있으나, ‘초대’를 받은 것이고, 이렇게 자력으로 출전권을 얻어 올림픽에 가는 건 처음인 것이다. 하지만, 그가 ‘K-1 500’에 출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카누 세부종목 ‘카약 1인승 500m’로 알아듣는 게 아니라, ‘이종격투기 K-1’쯤으로 받아들이고, 아예 “카누도 올림픽에 가요?”라는 벽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좀 외롭기도 한가요?”

“사실 외로워요. 올림픽에도 감독님과 나, 달랑 2명만 가니까.” 한국은 25개 종목에 선수 267명을 내보내는데, 단일종목에 여자선수 한 명이 출전하는 건 그가 유일하다. “양궁, 체조, 레슬링 등은 온 국민이 다 아는데, 카누는 잘 모르시잖아요.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외로움도 감수해야죠.”

그의 목표란, “결선 9명 중 한 명에 속해 결선 경기를 해보는 것”이다. 설령 결선에 간다해도, 267명 중 한명 정도로 파묻혀 올림픽에 가듯, 여러 메달 소식에 그의 결선진출은 또 묻힐 것이고, “메달 메달 하는데, 결선이면 족한다고?”하며 그의 목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손바닥이 곰발바닥 처럼 됐어요." 훈련이 끝나고 순자씨는 가만히 손을 내려 본다. 운동을 십여년 했어도 이렇게 물집이 잡힌다. 올림픽 티켓을 땄던 그때도 이렇게 하얗게 물집이 올랐다. 좋은 징조다.
"손바닥이 곰발바닥 처럼 됐어요." 훈련이 끝나고 순자씨는 가만히 손을 내려 본다. 운동을 십여년 했어도 이렇게 물집이 잡힌다. 올림픽 티켓을 땄던 그때도 이렇게 하얗게 물집이 올랐다. 좋은 징조다.
“카누에선 아직 한번도 올림픽에서 결선에 간 적이 없어요. 남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메달이 유력한 선수들에겐 결승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선이 저에겐 넘어야할 큰 벽입니다. 그건 제 꿈이고요. 현재 내가 최고에 오른 시점에서 카누계에 큰 획을 긋고 싶은 거예요. 내 기준에서 그 목표에 달성한다면 금메달도 부럽지 않을 겁니다.” 대표팀 차량까지 직접 운전하는 박기정 감독은 “순자가 스타트는 좀 느려도 근지구력이 좋아 후반부 레이스가 좋다. 순자가 갖고 있는 1분55초대 500m 한국신기록만 내주면 결선도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이순자는 강산에 <넌 할 수 있어>를 흥얼거렸다. “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다해도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가사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해요. 자신감도 생기고.” 담배 잎 엮고, 고추 따던 그 아이가 카누계에서 ‘순자의 전성시대’를 저어가고 있다. 올림픽에서 그는 또 고독한 레이스를 펼치겠지만, 배에 실려진 그의 단짝, 꿈은 순자를 응원할 것이다.

송기자 조피디의 스포츠 다큐
송기자 조피디의 스포츠 다큐
양양·춘천/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영상/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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