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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도복 입은 산골 꼬마들 “전국을 메치고 말테야”

등록 2008-06-03 08:28수정 2018-04-04 19:50

[송기자 조피디의 스포츠다큐] 강원 산골마을 고한초교 유도부
시내학교 도복 빌려 입던 우리
생긴지 1년만에 ‘금맛’ 봤죠
가을엔 전국대회 첫 도전해요
흙밭에서 잡힌 하늘소가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 아이들 수다가 시작된 틈을 노린 것이다.

 “혜경이는 밭다리를 걸더니, 그냥 지가 넘어갔고요.”
 “근우는 시작하자마자 넘어갔어요.”

 이 녀석들, 연년생 남매다. 산 중턱 막골에 사는데, 큰 언니와 열한살 차인 아홉살 혜경이는 아무리 “난 혜경이거든요” 떼써도 그냥 ‘끝순이’라 불린다. 둘은 엄마가 야근 나가고, 아빠가 아파서 과자를 먹으며 학교에 왔다.

 “강규는요. 넘어졌는데 코피가 나서 울었어요.”

 급식시간에 산더미같은 밥을 두 번이나 타먹었다던 4학년 강규의 몸무게가 55㎏인데, ‘쿵’하고 쓰러진 충격이 컸나보다. 아빠와 산다는 지연이는 어땠을까 들어보니, “업어치기 당하고 또 누르기 당해서, 울었어요. 저쪽 애가 셌거든요.”

 ‘고놈’들, 가만보니 지난 3월 강원도협회장기에서 죄다 첫 판부터 졌다는 얘기들인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또 재잘재잘. 영준이가 쓱 자랑을 하는데, 그 자랑이란 게 “기술을 잘 몰라서, 끝까지 버티기만 했는데요. 아깝게 졌어요.” 고로 졌다는 얘기. 영준이는 벌써 엄마한테 “금메달 따면 뭐해줄거야?”라고 물었다는데, 엄마는 아파서 아들 데뷔전에도 못 간게 미안하다. 자궁수술을 두번째 앞두고 있어서다. 탁현(54) 선생님은 유도 걸음마 아이들까지 출전시킨 게 “지는 것도 배워야 이기는 걸 안다”는 것이라 했다.

“붙으면 가만히 안 둘 건데요.”
“우릴 얕잡아 보지 마세요, 얍!”

빈교실에 차린 놀이터같은 유도장에 1학년 준우와 해성이가 “아싸, 1등, 아싸”하며 들어선다. 누가 오건말건 옷 훌렁훌렁 벗고 도복입다가, 준우가 팬티를 너무 내려 ‘고추’가 다 삐져나왔다. 둘 다 6학년 형들 도복을 물려입어 도복으로 바닥을 쓸고다닌다. 찬민이 등에도 검은색 매직으로 자기 이름을 쓴 흰색 반창고가 붙어있다. 학교 마크를 떼면 ‘장양’이란 다른 학교 이름이 튀어나온다.

강원도 정선 탄광촌 고한리도 5년 전부터 폐광촌이 되어갔다. 한 학년에 한 학급씩 있는 산골마을 고한초등학교에 유도부가 생긴 게 1년 전. 학창시절 유도를 배운 교직 34년차 탁현 선생님이 “아이들 뛰어놀게하고, 붙잡고 운동하면서 배려와 예의도 배우게 하기 위해” 유도부를 만들었다. “거지냐, 얻어입게”란 말도 들으며 원주 장양초등학교의 남아도는 유도복을 빌렸다. 산골 아이 누가 십삼만원하는 유도복을 구입하겠냐는 것이다. 체육시간에 쓰는 매트를 노끈으로 묶으니 유도매트가 됐다. 지금이야 주변 도움으로 자기 이름 적힌 유도복도 몇 벌 생기고, 조각조각 붙이는 유도매트도 깔렸지만, 아직도 다른 학교 낡은 유도복을 입는 애들이 여럿이다. 5학년 한범이 엄마는 “예전 유도복은 너덜너덜해서 잘 갖고 오지 않았는데, 자기 유도복 생기더니 빨아달라고 자주 갖고 온다”고 했다. 협회장기 때도 대형 리조트 후원받는 이웃동네 사북초 아이들은 전세버스를 불렀지만, 아이들은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5학년 지연이가 밀어내기 게임을 하다 사내아이들이 도복끈을 잡아당겨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다.
5학년 지연이가 밀어내기 게임을 하다 사내아이들이 도복끈을 잡아당겨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다.

 뭐, 그렇다고 애들이 여전히 ‘헐렁이’라고 생각하면 서운해할 꼬마들이 많다. 혜경이 배아플 때 겨우 한번 이겨봤다는 같은 반 ‘용가리’ 용휘도 그새 힘이 세져 업어치기와 낙법이 늘었고, 운동 싫다며 도망까지 갔던 5학년 명진, 호경, 한범이 3인방은 ‘고한유도 자랑’이니까.

 “아버지가 태백 탄광에 나가시고, 엄마는 새벽까지 장사를 하시는데 언젠가 쉬게 해드리고 싶다”며 제법 의젓해진 명진이는 협회장기 1등과 강원도 소년체전 3등을 했다. 명진이 엄마는 “그때 맥주 한박스, 노래방 한턱 쐈다”며 싫지않은 표정이다. 지난해 11월 교육감배 첫 경기 전에 “무섭다”며 울었던 호경이는 지난 4월 소년체전 금메달을 땄다. 이쯤되니 슬슬 “쟤네 누구야?” “어느 학교야?”란 말이 나온다.

 가을이 되면 학교를 떠나는 탁현 선생님은 이제 9월 교보생명컵 전국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한다. 김희진 코치선생님은 “5학년 아이들은 실력이 있어 잘 준비하면 전국대회 입상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했다. 유도를 그만둔 6학년 호준이까지 돌아와주면 좋겠지만, 아직 호준이 반응이 없다.

 “저렇게 (13명이) 제시간에 다 나오고, 형들이 가르치는 걸 보면 마음이 참 뭉클하죠. 애들에게 너희들이 강원도 최고라고 얘기해줍니다.”

송호진기자·조소영피디의 스포츠다큐
송호진기자·조소영피디의 스포츠다큐

 산골 꼬마들의 첫 전국대회 출전. 기죽어 또 우는 건 아니겠지? 명진이가 말한다. “붙으면요. 가만히 안둘건데요.” 우릴 얕잡아보지들 마시라는 거다.

 글 정선/송호진 기자dmzsong@hani.co.kr, 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동영상은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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