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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꿈 꼭 이룰거예요 그리운 엄마, 볼것만 같아서…

등록 2008-07-01 19:13수정 2013-03-04 15:58

광명이는 대전체중고 3학년 레슬링 선수이다. 북에서 태어나, 남쪽에서 국가대표가 되는 첫 레슬링 선수를 꿈꾸고 있다.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광명이는 대전체중고 3학년 레슬링 선수이다. 북에서 태어나, 남쪽에서 국가대표가 되는 첫 레슬링 선수를 꿈꾸고 있다.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송기자·조피디의 스포츠다큐 <4> 북에서 온 소년 순광명, 레슬링 금빛 꿈
10살때 북 떠나…엄마만 홀로 남아
대전체중 레슬링 유망주로 ‘훌쩍’
시작한지 2년만에 전국 우승권

“바다로 놀러가자.”

그럼 그렇지. 그래도 인민학교 여름방학인데, 아빠가 날 집에 그냥 놔두진 않을 줄 알았다고. 아빠는 ‘그곳’으로 떠난다는 뜻이었으나, 아이는 ‘바다’에 마음이 다 뺏겨버렸다. 2002년 8월17일 새벽 4시. 세 가족, 21명을 태운 나뭇배가 평북 선천군 홍건도 포구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며칠 놀면서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의심의 시선을 누그려뜨렸다는 걸, 위성항법장치를 구해 2년간 이 시간을 준비했다는 걸, 아이가 알 리 없었다. 조금 먼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게해주는 ‘어부’ 아빠의 방학선물쯤으로 여겼고, 사실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고약한 배멀미가 아이를 덮치고 있던 것이다. 중국 배가 나타났을 때, 배가 고장나 잠시 멈췄을 때 어른들이 왜 그렇게 초조해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틀이 흘러 큰 배가 또 다가왔지만 어른들은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손짓을 했고, 고기는 한번도 잡지 않았는데 인천해경 전용부두에 내린 것이다. “그때 사진 보니 카메라 앞에서 너도 손을 흔들고 있네?” “다들 손을 흔들기에….” 아빠는 “남조선에 왔다”고 했고, 아이는 “거기가 어딘데?”라고 물었다.

“레슬링 선수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싶어요.”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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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할아버지 고향은 충남 논산이었다. 한국전쟁 때 밀려가던 북한군에 끌려간 할아버지는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했고, 꽃게잡이 등으로 근근이 살던 자식들은 친구 가족들과 함께 배를 남쪽으로 돌린 것이다.

두달간 국가정보원에서 뛰어놀지 못해 살이 쪘다던 아이는 그제야 신의주 동네 친구 ‘덕철이’도 생각났다. “냇가에서 개구리 잡고, 밭에서 고구마와 옥수수도 캐먹고, 시장 지나 압록강에도 놀러가고 했는데.”

그리고 또 한사람, 엄마. 엄마가 없었다. 몇몇 남자 어른 외엔 끝까지 비밀에 부쳐졌고, 떠나기 전날 “바다로 가자”는 말에 엄마는 “나까지 비우면 도둑이 들어온다”며 집을 나서지 않았다. 엄마쪽 집안에 당일꾼이 있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으니, 그건 말못할 이별이었다.

지난 24일 청주에서 열린 전국레슬링대회 중등부 자유형 50㎏급 4강전. 경기 1분16초를 남기고 5-0으로 크게 앞서던 아이가 매어넘기기를 시도했다. 발목을 다친 터라 서둘러 경기를 끝내려고 한 건데, 그러다 큰 기술을 당해 다잡은 경기를 또 놓쳤다. “이번 것까지 합해 전국대회 동메달만 다섯번째예요. 동메달 징크스인가봐요.”

<b>열심히 훈련해서…</b>  광명이가 같은 학년 용대와 같이 실전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동료들은 광명이의 기술이 방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고 얘기한다. 광명이는 4인1실 기숙사에서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아침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열심히 훈련해서… 광명이가 같은 학년 용대와 같이 실전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동료들은 광명이의 기술이 방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고 얘기한다. 광명이는 4인1실 기숙사에서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아침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머리를 긁적이는 순광명(대전체중 3년)은 열여섯 살이 됐다. 6년 전 외국언론까지 보도했던 ‘21명 보트피플’속 그 아이. 아빠는 “10㎝정도 더 컸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또래 선수보다 4~5㎝가 작은 광명이는 빠른 태클에 이은 옆굴리기 기술로 반뼘 작은 키를 채운다. 장순환 대전체중 감독은 “레슬링 시작 2년밖에 안 됐는데 전국 우승권 실력이 됐다. 성실하고 스피드가 뛰어나다”고 했다. 북한 레슬링대표를 지낸 김대하와 5촌 사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된 광명이는 인민학교 축구부에 들어갈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말투 때문에 놀리는 아이들과 싸운 뒤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같은 반 현빈이는 “밝고 개그 끼가 좀 있다”고 했고, 레슬링 후배들은 “기술도 잘 가르쳐주는 형”이라고 했다.

광명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지만, 세살 밑 여동생 은경이는 대전 영세민 아파트 좁은 방에서 한달에 보름은 혼자 자야 한다. 아빠는 이틀에 한번꼴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야근하고, 야근 다음날에도 도배·전기 설비 같은 일이 들어오면 쉴 수가 없다. 아들에게 1주일에 2만원 용돈쯤은 쥐여주고 싶어서다.

광명이 아빠는 “레슬링할 때 아이가 고민했는데, 올림픽에서 메달 따면 엄마를 더 좋게 만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해줬다. 동생은 엄마가 보고싶다고 하는데, 광명이는 한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광명이는 “그러면 아빠가 미안해하고, 내 마음도 무거워지고, 또 조급해지니까요. 이렇게 운동하면서 포기 안하고 기다리는 거죠”라고 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장순 레슬링 국가대표팀 감독을 좋아한다는 광명이는 “7월 전국대회에서 첫 우승하고, 메달 따서 대학도 가고,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도 가고 싶다”고 했다. 광명이는 “몇 년 있으면 엄마를 볼 것 같다”는 꿈같은 바람을 얘기했는데, 아이 기억속에 엄마는 ‘퍼머머리에 키가 큰 사람’정도로 옅어지고 있다. 여덟살 때 평남 덕천 이모네집에 가서 개에 물린 상처가 오른 허벅지에 남아있는 걸 엄마도 기억하고 있을까. 바다로 놀러갔던 아이는 매트에 그리움을 또 묻는다.

<b>엄마가 이 메달 봤으면…</b>  외박을 받아 집에 온 광명이가 전국대회 동메달 5개를 목에 걸어보이고 있다. 실평수가 7평 정도인 영세민 아파트다. 초등학교 6학년인 동생 은경(왼쪽)이는 “오빠가 포기하지 말고 했으면 좋겠다”며 수줍게 말했다. 광명이는 “집에 혼자 있는 은경이가 인터넷으로 일본 애니매이션과 드라마를 자주 봐 공부를 하지않았는데도 일본어를 잘 알아듣는다”고 자랑했다.
엄마가 이 메달 봤으면… 외박을 받아 집에 온 광명이가 전국대회 동메달 5개를 목에 걸어보이고 있다. 실평수가 7평 정도인 영세민 아파트다. 초등학교 6학년인 동생 은경(왼쪽)이는 “오빠가 포기하지 말고 했으면 좋겠다”며 수줍게 말했다. 광명이는 “집에 혼자 있는 은경이가 인터넷으로 일본 애니매이션과 드라마를 자주 봐 공부를 하지않았는데도 일본어를 잘 알아듣는다”고 자랑했다.

송호진기자·조소영피디의 스포츠다큐
송호진기자·조소영피디의 스포츠다큐
대전/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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