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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대학시절 어떤 수업을 듣다가 첫눈에 반한 남학생이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학생의 학과와 학번, 이름을 알아내 그 학과에 아는 선배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93학번, 서동욱이란 남자와 소개팅을 주선해달라.” 그 선배의 대답은 “너 미쳤냐”였습니다. 왜냐고 묻자, “그 아이 유명한 그룹 가수잖아. 모르냐? 전람회라고. 여자들이 줄을 100m 서 있거덩!” “전람회가 뭐냐”는 질문에 그 선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학교 앞 음반가게를 친절히 알려주더군요. 머리카락 휘날리며 음반가게에 달려갔다가 좌절했습니다. 이미 음반이 몇개나 나온 유명한 가수인데다 그 음반에 그 남자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더군요. 지방에서 올라와 텔레비전도 그 흔한 워크맨도 없이 몇년을 살다보니, 무식해서 용감했고 그래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어쨌든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취직을 했고, 저랑 아무 일이 없었던 서동욱씨도 가수의 길 대신 취업의 길로 들어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워크맨 없이도 아무 불편 없이 잘 살던 제가 뭐 컴퓨터나 아이폰이라고 가깝게 지내겠습니까. 미니홈피가 인기였던 시절에 미니홈피를 만든 적도 없지만 남의 미니홈피에 들어가본 적도 없습니다. 블로그도 트위터도 당연히 하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시대와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다른 여자 선배와 이 문제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대체 왜 우리는 이런 걸 하지 않는 걸까?”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이걸 한다고 해서 누가 돈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죠. 선배와 나는 “회사에서 월급 주면서 쓰라는 기사도 쓰기 싫어서 괴로워 죽겠는데 돈도 안 주는 걸 대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트위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6만명 이상의 사람들과 팔로어를 맺으며 ‘트위터 마니아의 원조’로 불리는 두산 박용만 회장이 트위터에 “전람회 서동욱 지금은 우리 회사에서 뺑뺑이 도는 중”이라고 올렸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아! 트위터를 하면 이런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구나! 그리하여 개설한 트위터가 @kebinmom입니다. 부디 서동욱씨의 맞팔을 바랍니다.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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